닳아가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의 외투가 한 겹 두 겹 덮일 때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 그리고 물건 또한 세월의 낙인을 받는다. 사물이 나이를 든다는 것의 의미는 닳음, 약해짐, 더러워짐 등 부정적인 표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기쁨과 슬픔, 감정의 교감과 경험의 공유를 함께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기억한다. 새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를 받을 때의 설렘, 마음에 드는 물건인지 실체를 보고 사용하며 확인했었던 순간, 그 물건과 함께 했던 일상들. 시간이 흘렀는데도 새것과 같은 물건은 돌이켜보면 나와 잘 맞지 않아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닳고 낡고 더럽혀진 사물이야말로 편하게 나의 일상 속에서 함께 뒹굴거렸던 친구이다.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게 된 낡은 물건들 속에서 쓸쓸하지만 따뜻한 사물의 표정을 읽는다. 닳아가는 것에는 그 누구보다 뜨겁게 부대꼈던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만남의 순간이 아니라 헤어짐의 시간을 기억해보고 싶다. 너와 내가 만나서 함께 사부작 거렸던 날을 떠올려본다.
스태들러 라소플라스트 지우개
스태들러 라소플라스트 지우개. 처음에는 이렇게 읽는지도 몰랐다. S로 시작하는 긴 이름과 로마병정의 얼굴과 같은 마크의 지우개이다. 수많은 문구류 중에서 스태들러 제품은 좀 더 강직해 보였다. 독일 제품이기 때문일까. 일본 하이테크의 세밀함, 그리고 프랑스 빅 볼펜의 실용성과는 다른 본질에 심플하게 집중할 것 같은 이미지가 스태들러 제품에서 느껴진다. 샤프, 색연필, 형광펜, 지우개 등 스태들러의 제품을 여러 개 사용해보았다. 스태들러 지우개의 과하게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밸런스가 좋았다.
흰 종이보다 더 하얗던 지우개는 흑연으로 된 낙인의 얼룩이 점점 많아졌다. 천천히 무뎌지고 왜소해졌다. 종이 날처럼 날카롭게 각져있던 얼굴은 둥그스름해졌다. 세련되고 차가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해변가의 몽돌처럼 여기저기 닳고 문드러졌다. 하지만 그 볼품없는 모양새가 더 정감이 간다. 사물의 때가 아닌 인간의 때를 갖고 있다. 흑연에 담긴 인간의 실수를 덮기 위해 손아귀 속에서 자신의 몸을 짓이기는 마찰력을 꾹꾹 참아냈다. 지우개질은 숭고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Ctrl+Z으로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지우개는 찬양의 대상이다.
뉴발란스 운동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예쁜 신발을 살 때마다 주문을 걸어 본다. 신발이 예쁠수록 발에 불편해지기 쉽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뉴발란스 운동화는 예쁘면서도 편했다. 업무 분위기 개선을 위한 에이젼트를 맡게 된 직원들에게 부서장이 선물로 신발을 주었다. 발로 뛰는 일을 많이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선물 받은 신발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교환이 가능하다고 해서 찾아간 매장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보라돌이(보라색 운동화)가 있었다. 보라돌이는 너무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우아한 존재감이 있었다. 가죽도 스웨이드도 아닌듯한 애매모호한 질감이 좋았다. 형광 연두의 신발끈색은 보라와 상반되면서도 더 가볍게 날개를 달아주는 듯했다. 신고 다녀보니 때도 별로 안타는 착한 녀석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신으면서 패셔너블하게 느꼈던 보라돌이는 가장 자주 신는 신발이 되었다.
어느 순간 신발 뒤꿈치 쪽의 천이 헤져서 노란 스펀지가 보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발 바닥의 무늬도 아스팔트처럼 닳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신발이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언제나 함께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 너덜너덜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보라돌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더 신고 다니기보다는 이렇게 형상이라도 유지하고 있을 때 조용히 버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녕 버리는 일 밖에 남아있지 않을까. 흉물 논란으로 설치 후 철거되었던 서울로의 슈즈 트리(헌 신발 3만여 족을 활용해 우리 소비문화를 되돌아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던 설치 조형물)가 떠오른다. 보라돌이를 위한 슈즈 트리를 만들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