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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Jan 23. 2020

#08 호주에서 바리스타

앤드류와 소이 플랫화이트

한 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문구가 화제가 됐다. 일에 치여 저녁에 밥 한끼 먹는 것도 쉽지 않아 생겨난 말을 호주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호주에도 저녁이나 밤에 일하는 사람이 있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밤까지 일하는 ‘야근’은 없다. 카페도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4시면 문을 닫다보니 카페 알바를 하며 살아도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


호주 대부분 직장인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4시면 퇴근한다. 법으로 정한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이다. 주 5일 정도는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한국과 다르게 호주는 많아야 주 5일 일하는데 이 경우 일 중독을 뜻하는 워커홀릭 (Workaholic)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육아를 하는 부모는 주 3일 정도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재택근무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카페에서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카페는 월요일과 금요일이 가장 바쁜데 이날은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출근하는 날로 회사 근처 카페에서 팀 미팅을 갖기 때문이다.



호주 바리스타는 3시쯤 퇴근하다 보니 늘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늘 짧은 머리를 하고 누가 보아도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처럼 입고 다니는 앤드류는 워커홀릭에 가깝다. 카페 건너편 빌딩에 위치한 건축 설계 회사에서 주 5일 정도 일한다. 60명 정도 되는 직원이 있는 회사는 인건비가 높은 호주에서 규모가 큰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직원 대부분이 주 5일 일하지만 틈틈이 잘 쉰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출근하는 타입이다. 가장 큰 휴가 시즌인 연말에 회사가 문을 닫는 2주를 빼고 계속 출근했다. 일반적으로 4주에서 6주까지 휴가를 보내는 사람과 크게 비교된다. 하지만 그가 평일 5시 이후나 토요일에 일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커피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앤드류는 카페가 오픈한 이후로 꾸준히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그가 마시는 커피를 보면 전형적인 호주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호주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하루를 커피 한 잔으로 보낼 수 없다. 대부분 하루 세 잔 정도 마시는데, 일어나 출근 전에 한 잔, 모닝 티타임에 한 잔, 그리고 점심시간과 퇴근 사이에 한 잔을 마신다. 첫 커피는 집이나 출근길에 정해진 카페에 들러 픽업해 일하러 간다. 두 번째 커피는 회사 근처에 정해진 카페에서 마신다. 세 번째는 불규칙한 편인데 퇴근 전, 호주인 기준으로 일이 과하다 싶으면 커피로 이를 해결한다. 앤드류는 이런 전형적인 룰에 맞추어 커피를 마신다.


앤드류는 동료 플레쳐를 데리고 카페 오픈 첫날,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 마침 오픈한 카페가 있으니 오후는 거기서 커피를 마시자, 라는 시도 이후로 그는 많으면 세 번째 커피까지 마시는 단골손님이 됐다.


호주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다면 대부분 일관성, 컨시스턴시 (Consistency)라고 대답한다. 커피가 맛있는가, 는 기초적인 문제이고, 그 맛이 매일 똑같은가, 하는 게 카페를 갈 것인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 일관성은 커피의 맛과 향, 온도와 질감은 물론, 카페의 분위기와 직원의 태도까지도 포함한다. 호주 사람에게 좋은 카페란 익숙한 분위기에서 마음에 드는 커피를 언제나 똑같이 만들어 주는 곳이다.


앤드류는 엑스트라 샷 (Extra Shot)을 넣은 소이 플랫화이트를 마신다. 스몰 사이즈 커피를 주문할 때는, 이미 출근길에 한잔 마셨다는 뜻이다. 그는 집 근처 카페에서 아침에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 집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출근길에 픽업하는 것에 너무 길들여졌기 때문이리라. 세 명의 바리스타가 있는 그 카페에 유독 한 바리스타는 최악이라고 했다. 커피가 맛없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커피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에게 좋은 커피란 역시나 컨시스턴트한 커피다.


호주 커피가 갖는 몇 가지 특징이 중 하나는 강한 커피다. 호주 사람은 강하고 맛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한국사람 같으면 커피 맛이 너무 강하다 싶을 때 연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호주 사람은 설탕을 넣어서라도 강한 커피를 그대로 즐긴다. 그러다 보니 단조로운 맛을 내는 싱글 오리진 (Single Origin)보다는 풍부한 맛을 내는 블렌딩 (Blending) 원두를 사용하며 커피에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양도 많은 편이다. 강하면서 맛있는 커피는 맛있게 매운 음식처럼 고춧가루만 넣는다고 되는 식이 아니다. 커피의 맛은 생두를 블렌딩하고 로스팅 (Roasting)까지 어떻게 하느냐에 많이 달렸다. 원두를 그라인딩하고 추출하는 장비 또한 충분한 성능을 발휘해야 하며, 원두의 숙성 기간 또한 중요하다. 호주 표준이나 다름없는 에스프레소 용도의 블렌딩 원두는 로스팅 후 4주 됐을 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숙성이 충분히 되지 않은 원두는 가스가 나온다. 화이트 커피를 마실 때, 표면에 보글보글한 공기 방울이 많이 보인다면 원두가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두를 볶는 로스팅 과정 전에 서로 다른 품종의 생두를 혼합해 새로운 맛과 향을 가진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블렌딩이다. 유럽에 카페가 생겨나고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예멘의 모카항에서 수입한 모카커피였다. 이 모카커피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총독에 의해 모카에서 인도를 거쳐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동인도를 온통 뒤덮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바 커피가 탄생했다. 자바 커피는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고, 우연히 모카커피와 섞이게 된다. 두 품종이 섞인 커피 맛을 본 사람들은 새로운 맛에 열광했다. 블렌딩은 각각의 생두가 가진 개성과 향미가 사라지지 않고 어우러져 창조적이면서 안정적인 맛을 낸다.


호주 커피의 다른 특징은 우유를 섞는 화이트 커피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우유는 선택의 문제를 초월한다. 우유는 성인의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커피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래서 호주 사람은 강하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몸에 좋은 우유까지 만들었다.


카페에서 흔히 노멀 밀크 (Normal Milk) 라고 부르는 우유는 풀-크림 (Full Cream) 밀크이다. 여기서 지방을 제거한 스킴 (Skim) 밀크가 있는데 맛이 형편없다보니 2% 미만 지방이 든 라이트 (Lite) 밀크를 스킴 밀크라 부르며 사용한다. 그리고 유당을 제거한 락토스 프리 (Lactose Free) 밀크가 있다. 우유에서 자꾸 이것저것 빼다 보니 맛이 없어서 맛을 첨가한 우유가 플레이버 (Flavor) 밀크다. 아몬드 밀크, 소이 밀크, 코코넛 밀크가 대표적이고 최근 마카다미아 밀크, 오트밀 밀크나 고트 밀크를 사용하는 카페도 생겨나고 있다.


호주는 바리스타 시급이 높은 편이다. 호주인이 운영하는 카페의 경우 시급이 $24 정도인데 주말이면 $30 정도 받는다. 손님이 요구하는 복잡한 수준만큼 바리스타의 능력도 요구된다. 호주 바리스타는 공부를 덜 하는 약사와 과학을 이해하는 요리사 정도의 직업이지 않을까 싶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커피를 만들다 보니 퍼포먼스를 이해해야 하고 라떼아트를 할 만한 예술적 감각도 있어야 한다.


호주 카페는 손님마다 다른 커피를 주문하는데 커피의 종류를 선택하면 사이즈부터 시작해 에스프레소 양을 1/4인 쿼터 스트렌트 (Quarter Strength), 절반을 뜻하는 하프 스트렝스 (Half Strength), 엑스트라 샷 (Extra Shot)까지 정하고 필요에 따라 설탕, 스위트너 (Sweetener), 시럽의 양을 정한다. 그리고 우유를 선택하고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대단히 많은 경우의 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몇 가지로 정형화될 수 없다. 우유 같은 경우는 손님의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수해서는 안 된다. 한 잔의 커피를 짧은 시간 안에 실수 없이 만드는 과정은 프레젠테이션에 가깝다. 이를 오전에 수도 없이 반복하므로 강한 체력도 필요하다. 호주 사람은 참을성이 없다시피해서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 5분 이상 넘어가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리스타에게 신속함과 정확함마저 요구된다.


앤드류가 마시는 커피는 전형적인 호주 커피다.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플랫화이트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 더 강하고 건강을 생각해 소이 밀크를 선택했다. 레귤러 사이즈 플랫 화이트가 4불 50센트인데, 여기에 에스프레소를 추가해 5불이 되고, 소이 밀크 추가해 6불이 된다. 커피 한잔에 6천 원이라면 가격을 다시 확인하게 할 정도다. 호주 사람은 자신이 마시는 커피에 궁색하게 굴지 않는다.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팁까지 지불한다. 컨시스턴트 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카페에서.


앤드류가 일하는 회사에 60명 가까이 되는 직원이 있는데 내가 만드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10명 정도다. 일부는 커피를 마시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호주 사람은 새로 오픈한 카페에 가서 커피 맛을 평가하는 취미가 없다. 그들은 고지식하게 가던 곳을 간다. 그러다 보니 커피를 마실 곳을 정할 때 매우 신중하고 시간을 많이 들인다. 마치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새 한 마리가 공을 들여 둥지 하나를 트는 것 같다. 평생 살 집을 말이다.


처음 앤드류를 카페로 부른 건 동료인 플레쳐다. 두 사람 덕분에 10명 정도 되는 동료들이 전도됐다. 그러니 두 사람은 유난히 각별한 손님이다. 두 사람에게 커피 로열티 카드를 권했을 때,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다른 사람에게 홍보할만한 비즈니스 카드를 달라고 했다. 내 비즈니스가 잘 되게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충분히 그 말을 실천하고 있다.


앤드류와 플레쳐는 일이나 휴식을 빌미로 오후에는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대부분 함께 오는데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호주 사람이 사랑하는 잡담을 한다. 주변의 손님이 모두 사라지고 한산해지면 내게 꼬박 안부를 묻는다. 최대한 형식적이지 않는 대답을 하고 커피는 어떤지 묻는다.


플레쳐는 단호히 나를 보고 말해준다. “조, 여기 커피는 매우 컨시스턴트 해.” 그리고 앤드류는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호주에서 커피를 만들다 보니 커피가 맛있다는 말보다 컨시스턴트 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좋다. 이 말은 호주에서 좋은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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