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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Jan 19. 2020

#07 호주에서 바리스타

사이먼과 프렌치토스트

불어로 커피를 뜻하는 카페는 ‘커피 마시는 공간’ 마저 뜻하는 단어로 멋지게 변신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된 커피는 중동을 거쳐 유럽, 그리고 전세계로 퍼지게 된다. 1475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최초로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는데, 집에서 마실 커피를 살 수 있는 상점이었다. 그리고 162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카페가 문을 열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서 ‘플로리안’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유명한 카사노바의 단골 가게였으며 지금도 민트를 넣은 ‘카사노바 커피’를 시그니쳐 (Signature) 메뉴로 팔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문을 열어 현재까지 영업 중인 유럽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



이후 1650년 영국 런던, 1672년 프랑스 파리에 카페가 문을 연다. 카페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가 생기면서 술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된다. 호주 최초의 카페는 1950년대 중반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남부 유럽인이 대거 호주로 이민을 오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지고 왔다.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시작한 작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는 많은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오늘날 호주 커피의 표준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카페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카페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거나 책을 읽고,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치열함이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아주 고상한 공간이다. 호주 어느 거리에서도 가장 고상한 공간은 당연 카페다.


호주 카페가 다른 나라 카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업시간이 짧고 소비자의 요구 범위가 작다. 유행의 변화는 지독하게 느리고 손님은 단골이 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덕분에 카페의 업무는 번잡하거나 장대하지 않다. 호주에서 카페는 단순한 일을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일관성 있게 하면 성공하는 사업분야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호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행정 업무는 지독하게 느리고 까다롭다. 영어를 해야 하고 호주 사람의 취향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호주 사람은 기발한 것에 쉽게 현혹되지 않을 뿐더러 커피에 있어서만큼은 고지식한 편이기 때문에.


호주에서 카페만큼 근사한 사업은 드물다. 아침 일찍 오픈해 오후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 게다가 직장인이 밀집한 곳의 카페는 주말보다 주중이 더 바빠서 직장인과 비슷한 워킹 패턴을 갖는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풍기는 고상함 덕분에 하는 일도 척박하거나 지저분하지 않다. 호주 카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면, 쉽게 망하지 않는다.


한국에 수많은 카페가 있는데,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가졌다고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카페가 있지만 한국 카페와 호주 카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간을 찾는 목적에 있다. 한국 사람은 머무를 곳이 필요로 하고 호주 사람은 먹고 마실 곳을 필요로 한다. 한국 카페는 커피, 음료와 디저트를 주로 판매하지만 호주 카페는 커피와 아침식사 또는 점심식사를 파는 곳이다. 호주 카페를 한국식으로 보자면 식당에서 커피까지 파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카페는 가스를 이용해 불을 사용할 수 있는 키친이 있다. 커피는 기본이고 식사까지 제공하는데 호주에 카페를 전파한 유럽도 비슷하다. 커피와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은 커피 바 (Coffee Bar)라고 한다.


호주 사람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와 브런치다. 호주 정부도 이를 배려하고 있다. 모든 학교는 아침 10시 또는 10시 30분이면 일제히 30분 동안 티타임을 갖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 외에 티-타임에 먹을 음료와 간식을 준비해 가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티-타임은 커피 타임으로 바뀐다. 직장인도 10시가 되면 30분 정도 티타임을 갖는다. 이때 미뤄둔 아침식사를 먹거나 미리 점심식사를 먹기도 한다. 이 시간이면 집에서 노는 사람까지 누구라도 만나 카페에서 커피와 브런치를 즐긴다. 호주에서는 응급한 일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부부도,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당연하게 티타임을 갖는다.


밝은 색 셔츠와 치노 바지를 주로 입는 중년 백인 남성인 사이먼은 티타임 시작 전에 카페에 온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카페가 위치한 건물 보안을 담당하는 회사 사장이다. 전 직원이 다섯 남짓이라 남루한 회사 사장이랄 수 있지만, 브런치 즐기는 여유만 보자면 중견기업 간부급이다. 그는 절대 테이크어웨이 (Takeaway)로 주문하지 않는다. 카페에 들어와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앉아 여유롭게 음식을 기다린 뒤, 여유롭게 먹고 마시고 여유롭게 일터로 돌아간다. 사람이 몰려 바쁜 티타임 시간 전에 말이다.


사이먼은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 다른 커피를 마신다. 보통 머그에 플랫화이트를 마시지만 아이스 라떼나 카푸치노를 마시기도 한다. 그는 호주 사람답지 않게 그때그때 다른 커피와 한결 같이 프렌치토스트를 먹는다. 처음에 다른 음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시험삼아였을 뿐이다.


프렌치토스트는 말 그대로 프랑스식 토스트를 뜻한다. 본래는 남은 빵을 재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빵에 우유와 버터를 적셔 구워내던 것이 프랑스에 가서 크림과 달걀에 적셔 구워낸 뒤 잼이나 과일 소스가 곁들여져 그럴싸한 음식이 된 것이다. 하지만 프렌치토스트는  프랑스가 아닌 북미 지역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이름에 관해서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1724년 뉴욕의 요리사인 조셉 프렌치가 만들고 그의 이름을 붙여 프렌치토스트가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미 지역으로 이주한 프랑스 사람이 만든 요리라는 것이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 바게트, 식빵, 또는 브리오슈 (Brioche) 등 다양한 종류의 빵을 사용할 수 있다. 빵에 달걀을 입히고 과일이나 잼을 곁들여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메이플 시럽을 빼면 프렌치토스트라고 할 수 없다. 메이플 시럽은 북미 설탕단풍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으로 만든다. 프렌치토스트는 북미라는 장소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데, 먼저 맛있는 빵을 준비해야 한다. 프랑스라면 어떤 빵이든 맛있어 고민거리가 아니지만, 호주 빵은 맛없는 편이라 어울리는 빵을 찾기 쉽지 않다. 그나마 달걀과 버터가 듬뿍 들어간 브리오슈가 이상적이다. 빵이 준비되면 계란을 풀어 시즈닝 (Seasoning)을 하고 취향에 따라 시나몬 파우더를 넣는다. 다음 계란을 빵에 입히고 그을린 팬에 버터를 두르고 적당히 잘 구워준다. 프렌치토스트는 잼 또는 과일, 견과류와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골드코스트와 같은 따뜻한 동네에서는 구운 바나나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바나나와 양파는 불에 익히는 과정에서 단맛이 나오는데, 이를 '카라멜라이징'이라 한다. 호주 사람은 강한 커피를 사랑한다지만 은근히 단것을 좋아해 ‘카라멜라이징’한 음식을 좋아한다.



캐러멜 라이즈 바나나와 피건을 곁들인 '프렌치토스트'



아열대 기후인 골드코스트에서는 과일마다 제철이 있다. 그래서 과일을 컨시스턴트하게 사용하기 힘든데, 바나나와 딸기를 사용하다 키위를 사용하기도 하고 라즈베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사이먼이 사랑하는 프렌치토스트는 6개월 가까이 약간의 실험을 거쳐 구운 바나나와 피건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도움을 줬다. 그만큼 컨시스턴트하게 프렌치토스트를 먹은 사람도 없으니깐. 그는 스모키한 메이플 시럽과―향 첨가가 아닌 천연 메이플 시럽을 의미한다―캐러멜 라이즈 바나나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프렌치토스트도 먹어본 놈이 아는 법이다.


사이먼은 아들이 셋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카페를 온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프렌치토스트를 먹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각자 다른 메뉴를 먹었다. 호주에서는 서너 명 이상 손님이 간편함을 생각해 메뉴를 통일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피를 나눈 가족도 각자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다르다. 회사 미팅에 참가하는 20명의 커피를 주문할 때,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각각 다른 20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커피를 대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어느 날 사이먼은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사무실을 옮긴다고 했다. 아쉽다며 악수를 건네는 그의 표정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향한 연정이 묻어났다. 그가 떠나고 프렌치토스트를 메뉴에서 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브리오슈 빵은 유통기한이 짧은 데다 원가가 높다. 게다가 바나나 카라멜라이징하는 시간은 은근히 오래 걸린다. 들이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 인기가 없다. 하지만 그와 함께 완성한 프렌치토스트는 궁극의 맛을 찾아냈다. 또 다른 사이먼을 기다려야 한다.


마주칠 때마다 특유의 윙크를 지으며 인사하는 사이먼은 매일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카페 근처에 일이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카페로 온다. 남들보다 일찍 티타임 시작 전, 메뉴판에서 사라진 프렌치토스트와 그때그때 다른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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