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엘 Jan 16. 2020

#06 호주에서 바리스타

멜라니와 아몬드 라떼

호주에서 다양한 나라 출신의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는데, 심지어 북한에서 온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호주 정부는 그동안 차별 없이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받아들이고 있다. 광활한 땅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호주를 찾는 외국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사람, 공부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 그리고 관광이나 휴양을 위해 오는 사람이다. 호주의 깨끗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 여유와 낭만이 있는 삶은 대단히 매력적이라 잠깐 머무르는 사람도 영주권 비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골드코스트는 호주 사람에게도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이다. 날씨에 반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일 년 내내 따사로운 날씨는 값으로 메길 수 없다. 돈을 벌거나 공부를 한다면 시드니 같은 대도시로 가야 한다. 골드코스트는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이 여력이 있어서 사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건 아니지만,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딱 맞는 도시다.


멜라니는 호주 정반대 편 스위스에서 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우연히 골드코스트로 오게 됐지만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 한다. 인스타그램에 늘 해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는 알프스 산골 소녀는 골드코스트의 라이프에 푹 빠져있다. 나 또한 그러했으며 카페를 찾는 손님들 대부분이 그렇다.



아이를 데리고 많이 찾는 탈레버즈라 크릭 (Tallebudgera Creek)



스위스는 지리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크게 3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북쪽은 독일어, 남쪽은 이탈리아어, 서쪽은 불어를 쓰는데 그녀는 불어를 쓴다. 멜라니의 말에 따르면 22개 주가 있는 스위스에서 인구 수가 더 적은 지방에 가면 더 많은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자신도 알아먹기 힘든 언어가.


멜라니는 아몬드 라떼를 마시는데, 간간이 호주를 대표하는 간식거리 ‘바나나브레드’를 주문해 같이 먹는다. 아침에는 보통 커피와 더불어 크루아상, 바나나브레드, 머핀이 잘 팔린다. 오후가 되면 유통기한이 긴 달디단 케이크나 브라우니가 많이 팔린다. 점심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아 식사를 대신할만한 프로틴-볼 (Protein Ball) 또는 에너지-바 (Energy Bar) 도 많이 찾는다. 전에 일하던 카페에서 직접 프로틴-볼을 만들어 팔았는데, 약간의 꿀과 프로틴 파우더를 넣고 대부분 피넛-버터 (Peanut butter)로 채운 골프공만 한 음식을 여기서는 건강한 음식으로 취급한다.  


아몬드 라떼는 커피에 아몬드를 넣는 것이 아니라 아몬드 밀크로 만든 커피다. 우유가 성인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떼지 못하는 호주 사람은 우유에서 몸에 좋지 않은 지방과 유당을 빼내고 맛을 첨가한 플레이버 밀크 (Flavor Milk)를 마신다. 아몬드 밀크, 소이 밀크, 코코넛 밀크가 대표적이다. 최근에 오트밀 밀크와 마카데미아 밀크를 마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 중 호주 사람에게 가장 인기 많은 플레이버 밀크는 아몬드 밀크다.


아몬드 밀크는 상상과 다르게 전혀 고소하지 않으며 밍밍하고 떨떠름하다. 카페에서 주로 사용하는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언스위트 (Unsweetened) 아몬드 밀크는 더 심하다. 크림이 적게 들어있어서 스티밍 (Steaming)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유에 든 크림은 흔히 라떼 위에 올라가는 거품이다. 우유에 크림이 많을수록 라떼 아트가 잘 되는데, 아몬드 밀크는 숙련된 바리스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


어쩌다 실수로 만들어진 아몬드 밀크 커피를 마실 때가 있는데 매번 호주 사람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호주 카페에서 아몬드 밀크의 인기는 대단한데, 오히려 고소하고 단 맛을 내는 소이 밀크의 호불호가 크다. 대부분 아시아인은 아몬드 밀크보다 소이 밀크를 선호한다. 호주 사람의 아몬드 밀크 사랑은 미스터리하다. 카페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보니 알게 됐는데 아몬드 밀크는 온도를 70도 이상 스티밍 했을 때, 특유의 달콤한 맛이 만들어진다. 호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비터-스위트 (Bitter Sweet)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호주 사람은 라거 (Lager) 맥주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쓴맛을 유난히 좋아한다. 비터한 맛의 커피를 마시고 피쉬 앤 칩스 (Fish & Chips) 밀가루 반죽에 맥주를 넣어 비터한 맛을 만들어 내니 말이다.


아몬드 밀크로 만드는 커피는 손님이 말하지 않아도 살짝 더 뜨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저 커피를 마시는 것뿐이지 커피를 연구하고 실험하지 않는다. 손님이 바라는 조건은 울타리이고 바리스타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잔의 커피로 손님은 따스한 위로와 편안함을 얻는다. 호주 카페는 이런 특징이 더 도드라진다. 호주 사람에게 커피는 대단히 중요하니까.


멜라니는 매번 커피를 테이크어웨이 컵에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그 모습은 불어를 사용할 뿐인 스위스 여자를 프랑스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6개월 동안 아침마다 4 곳이나 되는 다른 카페를 건너뛰고 커피를 마시러 오는 그녀는 특별한 손님이다. 그런데 나를 난감하게 한 적이 있다. 자기 이력서를 내밀며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다.


누군가에게 매일 커피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야금야금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은 2분 정도 시간을 들여 10 온즈 정도 용기에 담길 뿐이지만 마시는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많은 것을 연상시키고 상상하게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멜라니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이력서를 굳이 보지 않아도 그녀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일할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호주 카페에서 일할만큼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 아직까지는.


호주에서 법으로 정한 시급은 19불이 넘는다. 환율 차이가 있지만 2만 원 가까이 된다. 이는 최저시급이지 최저시급을 주는 곳은 대부분 외국인 사장이 외국인을 고용하는 외국인 사업장이다. 한국인 사장이 한국인을 고용할 때 최저시급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주 사람이 사장인 호주 카페를 예로 들면 대게 시급 23불에서 25불 정도를 준다. 여기서 주말과 공휴일에는 1.5배를 준다. 같은 영어권 국가인 미국과 캐나다 최저시급이 10불도 안 되는 걸 감안하면 호주는 돈을 벌기에 매력적이다.


호주는 일할 사람이 없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할 사람을 데려오지만 일자리 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 멜라니처럼 잘 만든 이력서를 이 가게 저 가게 열심히 돌리다 보면 그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되겠지,라고 상상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특히 도시의 경우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닌데 많은 유학생, 워홀러, 그리고 현지인까지 경쟁하다 보니 매니저는 이력서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을 대부분 무시한다. 인건비가 비싸서 사람을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지 않는다. 일을 경험해 보는 트라이얼 (Trial) 도 3시간 무급이고 나머지는 최저시급 이상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에서 구인은 대단히 신중하게 진행된다. 호주에서 신중하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바리스타 한 명을 구할 때 그만둘 사람은 적어도 한 달 전에 공지를 준다.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직원이 이미 있기 때문에 크게 급할 것도 없다. 카페는 요구하는 조건들을 적어 구인 광고를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력서를 보내고 누군가는 직접 찾아온다. 조금 과장하자면 일주일에 다양한 국적 출신의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지원한다. 그 많은 사람의 이력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최대한 필요한 것을 최소한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바리스타로서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지와 얼마나 오래 일해 왔는지 정도다. 나머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어서 불확실할 뿐이다. 3명 정도 추려서 트라이얼 기회를 준다. 그리고 실력과 가능성이 확인되면 최소한의 시프트로 인수인계에 들어간다. 호주는 1명의 바리스타를 뽑더라도 대부분 2명 정도를 트레이닝한다. 그리고 시프트를 나눠주고 결국 둘 중에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시프트를 차지해 간다. 오로지 능력으로 말이다. 이렇다 보니 호주 카페는 각오만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호주 인건비는 너무 비싸다.


호주 카페에서 일하고 싶을 때, 가장 빠른 길은 호주 카페에서 일한 경력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게 호주 카페에서 주 3일 파트타임 기회를 열어준 한국 친구도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무려 한 달을 무급으로 트라이얼 했고 사비를 들여 바리스타 코스를 이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급 23불을 받으며 일하게 됐다. 참고로 나는 2일 트라이얼 후 호주 카페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호주 카페에서 일한 경력은 없었지만 커피 머신을 다룰 수 있고 영어 회화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가게에 오는 손님이 일해도 되는지 묻는데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카페 사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멜라니에게 상심을 안기고 싶지 않아 저녁 시간 영업을 조금 더 앞당겨보기로 했다. 아직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그녀에게 제안할 수 있는 일은 한산한 저녁 시간에 서빙을 하면서 커피를 만드는 일이다. 그녀가 만드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와 이야기를 쌓아갈 손님 생각에 벌써 흐뭇해진다.


이전 05화 #05 호주에서 바리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