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Meow

수필과 음악

by 조정호

계절이 지나갑니다. 한국에선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건너가는 5월 즈음 라스베가스에선 이미 뜨거운 햇볕이 도로를 녹이고 있었습니다. 거리 위에 피어오르는 열정의 아지랑이 꽃은 시들 줄 모르지만 마음속엔 뜨거움이 전해주는 숨 막힘만 가득합니다. 음악 작업은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갑갑함이 반복되고 건반 위에 석고를 발라 놓은 듯한 두 손이 보기 싫었습니다. 으레 그렇듯 한숨을 쉬며 집 앞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습니다.


밤이면 종종 마주치는 동네 길고양이가 무심하게 앞을 스쳐 지나가길래 ‘얌마’하고 불렀더니 쪼르르 달려와서 안기는 겁니다. 잘해준 것도 먹이를 준 적도 없는데 달려와 안기는 녀석이 기특하고 귀여워서 같이 놀았습니다. 그 후로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집 앞에서 기다리는 녀석이 예뻐서 먹이도 사다 주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같이 놀기도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같이 쪼그려 앉아 비를 구경하고 홀딱 젖은 몸이 딱해 드라이기를 틀어서 말려주려 하면 휘둥그레 놀라서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 모습에 웃기도 했고, 박스로 집을 지어 주었더니 시큰둥하여 괜스레 머쓱해지기도 했습니다. 꼬리에 화상을 입고 와서 고통스러워할 땐 내 마음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아프기도 했지요. 자동차 밑에 숨어 아파하는 녀석을 그 자리에 앉아 한참 지켜봤습니다. 싸우는 소리에 놀라 뛰어나가 보면 사방에 털이 빠져 있기도 하여 내 마음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인과 반려묘의 관계보단 친구로서의 우정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해가 지면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도 한국에 비하면 극히 적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평소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힘듭니다. 그 녀석과 만났을 때는 집 앞 가로등이 한동안 끔뻑끔뻑 거리더니 완전히 빛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노크로미의 그리자유 같은 곳에 그 녀석은 오브제가 되어 색을 넣어 줬습니다.


현관 앞에서 알짱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조금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멋진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감정 없는 인사와 의미 없는 손을 심심치 않게 건네는 요즘 말이 안 통하는 고양이 한 마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어린 왕자에 나온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란 어구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가던 날입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일까요. 데려갈 수 없는, 데려가면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린아이처럼 생떼 쓰는 일 없이 쉽게 수긍했습니다. 계절과 하늘에 온통 가을 색이 묻어 나오던 10월 오후 6시 즈음 한참을 집 앞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다면 떠날 수 있을까. 울지 않을 자신은 있을까. 차를 타고 잠시 나갔다 올 때면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녀석인데 이제는 오지 않는 사람을 얼마나 더 기다릴까. 밥은 먹고 다닐까. 곧 추워지면 지낼 곳은 있을까.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두 손에 꼭 쥐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창틀에 앉아 '나 왔어' 꼬리로 창문을 '통통' 두드리던 녀석의 노크 소리를 여전히 듣고 싶습니다. 아직도 비 오는 날이면 컵라면이 먹고 싶습니다. 현관 앞 처마 밑에서 함께 비를 보며 나는 컵라면을 먹고, 녀석은 사료를 먹던 그 기억들이 부슬부슬 이슬비로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음악으로 남아있는 노란 치즈색 고양이 '삐순이'입니다.



음악 링크 'Hi Me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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