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겠지? 되겠어?

산문과 머리글

by 조정호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되겠지?' 생각했고, '설마 되겠어?' 생각했습니다.


곡을 만들고 여러 스튜디오에 음원을 보내며 주고받았던 수많은 이메일, 전화, 화상통화, 문자, 카카오톡 그 안에는 가슴을 죄어 숨쉬기 힘들게 만들던 성장통이 있었습니다. 아직 이룰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을 배우며 살아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평생 하나에 몰두하시는 분들에겐 어리광이겠지만, 그래도 청소년기의 일정 부분, 청년기의 반 이상, 장년기엔 오로지 음악만 보며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땐 참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에 찍힌 발자국이 그리 선명하진 않습니다. 가장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땐 몇 년을 하루 4시간만 자며 16시간씩 작업하고 몸에 탈도 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조차 최선의 노력은 아니었기에 부끄럽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는 이제 무작정 달리기보단 뭘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그리 가소로운지 실소가 납니다. '아 몰라' 가벼운 마음으로 어제 작가 신청을 했고 오늘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렇게 매달리던 음악은 항상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더니.


곡 작업은 쉼 없이 하는데 아무런 결과 없이 달력은 한 해를 찢어버리고, 마흔까지 죽어라 음악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는데 어느새 세월의 기차는 충돌을 개의치 않는 속도로 정해놓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 나가던 서른의 후반. 꿈으로 향하는 걸음을 이해 못하고 돈으로 사람을 가르는 세속적인 역겨움을 게워내고 탈진할 때 세상이란 놈이 유혹하더군요. ‘여기 현실 백반 무지 맛있어. 와서 한번 잡숴봐.’ ‘그래. 라면 질릴 때도 됐지. 현실 백반 한번 먹어보자.’ 냉큼 주어 먹었습니다. 우선 꿈에서 벗어나 조금 쉬고 싶었고, 흘러가는 현실을 생각 없이 살며 작업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한 투자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북미 서부 투어 가이드를 시작했습니다. 한 해 약 천명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돈은 벌리는데 꿈이 멀어지는 만큼 현실을 살찌우는 느끼한 기름 냄새에 현기증이 났습니다. 꿈속에만 있을 땐 알지 못했던 현실과 꿈 사이의 공간엔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또 다른 고민과 생각이 있더군요. 어지러운 상념이 정리될 즈음 꿈의 도로 '루트 66'에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꿈과 청춘의 도로 '루트 66'에 있어요. 꿈이 있으면 행복하죠. 하지만 꿈으로 가는 그 길이 이상하게도 참 아프더라고요. 앞으로 우리 친구들은 어떤 길을 걸어갈까요. 좋고 행복한 것만 알고 싶고, 멋진 사람만 만나고 나 또한 근사하고 싶은데 그러기는 쉽지 않아요. 앞으로 여러분이 만날 능구렁이 독사 같은 사람들에게 상처 입고 꿈과 희망 현실이 무너지고 찢겨 털썩 주저앉기도 할 텐데 그때 무척 마음이 아릴 거예요. 비록 꿈으로 가는 길이 험난해서 발바닥이 너덜너덜 떨어지고 피투성이가 돼도 그 과정은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아름다운 건 그토록 치열한 과정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되겠지! 되겠어? by 김가영.JPG Paint by 가영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고 냉혹해서 우리 모두 사회가 바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라면 먹는 삶이 군내 나게 힘들어서 꿈을 포기할 땐 서럽게 울겠죠. 근데 있잖아요. 꿈을 포기하는 게 삶을 포기하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낙오자도 아니고, 도망치는 것도 아닙니다. 꿈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방향도 틀 수 있어요. 또 여러 개를 가질 수도 있답니다. 변절자가 아니에요. 꿈을 조율하는 겁니다. 그리고 꿈이 없는 친구들도 자신을 한심해하지 마요. 꿈이 없어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어요.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르는 친구들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는 거예요. 그럼 그 안에서 꿈도, 희망도, 사랑도 모두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비록 내가 이렇게 말해도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고 꿈이 없는 여러분들에게 손가락질할지 몰라요. 패배자 라면서. 속상해하지 마요. 우리 친구들 잘못이 아니니까. 결과에만 박수 칠 줄 알고 과정에는 무심한 우리 어른이 만들어놓은 부끄러움입니다. 사회는 그걸 실패라고 비웃어도 난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죽을 만큼 아픈데 옆길로 간다고 그걸 어떻게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어요. 따스한 위로 한번 건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힘들어 울고 있는 우리 친구들을 비난할 수 있겠어요. 무시하는 겁니다. 꿋꿋이 행복을 찾아가는 거예요. 우리 함께한 이틀 동안 신나게 웃었죠?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아무 걱정 없이 ‘꺄르르’ 웃었던 그 소리를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의 세상 밖에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도 노력할 테니까 우리 친구들도 자신다운 표정 짓길 바라요. 응원할게요.”


어쩌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일 한번 하고 오면 사치스러운 커피 몇백 잔을 먹을 수 있는 현실 백반이 맛있습니다.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돈을 벌었다 생각하지만 아이들을 보면 미안합니다.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어떻게 번 돈인데 이걸 내가 가져갈 자격은 있는 것인가.


‘되겠지?’ 생각했는데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좋은데 음악 할 때처럼 고생을 안 해봐서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뚜렷한 목표 없이 글을 썼다면 이제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꿈에서 잠시 떨어져 현실을 사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웃고,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의 눈물을 보고, 직장인의 한숨을 듣고, 어머님 아버님들의 자상함을 배웠습니다. 잊지 못할 삼 년의 기억과, 한국에서 10,635 km 떨어진 무명 작곡가가 미국에서 보낸 청춘 16년을 기록하려 합니다. 누군가 읽고 글에 묻혀 잠시 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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