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값, 꿈 값

수필

by 조정호

요즘 부쩍 어머니와 통화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겨울이 부끄럽게 수화기 너머로 따뜻한 목도리를 둘러주십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함께한 슬프고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합니다. 10년 전 라스베가스로 오며 사막에서 겨울 옷이 필요할까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사주신 오리털 파카를 별생각 없이 챙겼는데 감기로 고생할 때 어찌나 포근하던지요. 입고 있으면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아 편합니다.


엊그제는 저녁놀이 아름다웠습니다. 농부가 한 땀 한 땀 심어 놓은 딸기가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1월의 하늘 밭에 싱그럽게 과실을 맺었습니다. 농부가 흘린 땀방울을 오롯이 머금었겠지요. 딸기향이 부드럽게 퍼지는 하늘 아래서 입사 지원한 회사의 불합격 메일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음악 스튜디오에 지원하고 떨어지는 끊임없는 반복에 지쳐있었습니다. 굶어 죽어도 지키겠다던 작곡가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습니다. 몇 명 밖에 알아봐 주지 않는 작곡가 직함을 반쯤 포기하고 음악 관련된 출판사에 지원했습니다. 공연 기획과 글 선별하는 일도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었고, 작곡을 포기한 건 아니니 현실과 조율해 보자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겠단 각오는 있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너무 안일했나? 아직 농부만큼 성실히 살지 않았나? 흘린 땀은 많은 것 같은데 언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꿈을 낮춰도 안 되는 것인지, 흐드러지며 몽실몽실 붉게 물든 하늘이 그저 조금 서럽습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메이저 음악판에 진출할 수 있겠단 꿈을 꾸었습니다. 굴지의 기획사와 여러 번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메일이 긍정적인 대화를 바삐 나르는 동안, 좁고 어둑선한 골방 작업실은 이미 고급스러운 원목 인테리어로 꾸며진 넓고 근사한 스튜디오였습니다. 배 아픈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노래들은 벌써 다 자라서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노래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가수와 노래의 여행 이야기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느 틈에 얼굴이 흠뻑 젖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날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 중 유독 빛나는 별 하나가 나를 태운 우주선 같았습니다. 그리곤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요. 하지만 우주선은 중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추락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비행선은 바람의 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날개가 뜯겨 나갔습니다.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한 게 어느 사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습니다.


새벽에 작업을 하며 피아노를 치면 음의 여운이 온화한 바람을 타고 살포시 어깨 위에 내려앉습니다. 마지막 음을 누른 손가락이 건반과 함께 정적에 묻히면 등 뒤에서 고요함이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그 고요가 가끔 눈물 맺혀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부서집니다. 내 안에 머무는 작은 호수 안에 이 아름다움을 꿈과 함께 담고 싶습니다. 꿈은 일상입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변치 않는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불합격 통보가 호수 안으로 퉁 떨어지면 물결이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기분 좋은 희망은 놀라서 사라집니다. 나에겐 늘 있는 일이기에 그냥 담배 하나 피고 한숨 한 번 내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지원했던 회사의 신조와 나의 가치관이 잘 어울린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던 어머니께 전해 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paint by 가영


풀이 죽을 때마다 종종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도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제는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동생과 같이 보았던 'The Bear'를 보았습니다. 머리가 다 큰 건지 마음의 오븐이 식었는지, 일부로 연출한 것이라면 예술의 도덕을 생각해 봐야 할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감동은 변함없었고, 가족과 함께한 오래된 기억이 애틋하게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난 어느새 그때의 피카디리 극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흘렀습니다. 아기곰의 가여움이 선율을 타고 시큰하게 코 끝에 올라앉았습니다. 어머니는 훌쩍이는 나를 보며 괜찮다고 살포시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다정한 온도를 나눠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코찔찔이 동생은 기어코 눈물과 콧물을 흠뻑 쏟아 냅니다. 동생의 울음소리는 'Yoshimata Ryo'의 'Breath'를 악보로 그립니다. 계속되는 실패로 턱 끝까지 찬 가쁜 숨을 진정시켜 주고 토닥여 줬습니다. 그때의 피카디리 극장엔 어머니의 체온과 동생의 흐느낌이 녹아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예쁜 옷도 입지 못한 외출이었고,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추억이 꼬질꼬질한 사진 같이 따스합니다.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손 끝에 온기가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음악을 하며 항상 실패만 합니다. 때론 '내 음악 괜찮은데.' 생각하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글은 한참 멀었습니다. 가끔 내 것을 내 것이라 말하지 못하면 분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어머니께서 '뭔가 하나 더 만들면서 공부하는 것이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빼쭉 삐져나온 입도 쏙 들어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마음이 음악과 글로 성숙하게 표현되면 투박한 두 손이 여리고 섬세해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이 빛납니다. 작업이 마음 가는 대로 만족스럽게 되면 하루에 라면 두 끼 먹는 삶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통장의 잔고를 보면 꿈과 현실의 실 몽당이가 뒤죽박죽 얽혀있습니다. 그냥 음악과 글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싶습니다. 라면 냄새가 역할 땐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꿈은 라면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싸다는 걸 배워갑니다.


오늘 음악을 듣다 심장이 내려앉는 글을 보았습니다.


'My mom is alcoholic and everytime she's drunk and throws stuff at me because I take her glass away, I run back into my room and listen to this. I can force myself to concentrate on the important stuff again while listening, and I really thank you for uploading this video. It makes me forget and enjoy my life for a moment.'


'우리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항상 술에 취해있고 컵을 치운 것 때문에 저에게 물건을 집어던집니다. 그러면 전 방으로 달려가서 이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쁜 일을 잊고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기에 노래를 올려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때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음악과 글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한 번 살아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고 글을 읽는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으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것으로 이루고 싶은 욕심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욕심을 움켜쥐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좌절이 짓누르는 무게가 어떻게 숨을 옥여 죄는지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마주할 실패가 아찔합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고통이 점점 무뎌지기도 합니다. 단단해지는 것일까요.


돈을 어떻게 벌었나 보다 현재 돈이 얼마나 많은 지가 더 중요하고, 정성스러운 과정보다 화려한 결과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 소신을 지키며 나 다운 표정을 지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안에 가득 찬 분노를 삭이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바름을 닮아 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몸소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이기적인 행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라면 먹는 삶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아기에게 라면을 먹이는 것은 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이 명제를 조금씩 이해합니다. 삶의 의미를 묻고 고민할 수 있게 나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나보다 더 철든 동생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매번 넘어지는 꿈의 성장통이 아프지만 조금 더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