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내가 국문학과에 가고 싶다는 것은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던 진로였기 때문이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면 취업하기 힘들어.”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꼭 국문학과를 가야 하는 건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그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기초학문에 속하는 인문학 관련 학과는 취업이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돈 벌기에 좋은 전공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국문학과를 가야겠다고 정한 뒤로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돈을 좀 벌지 못하면 어떻단 말인가? 그건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3 수험생이 되고는 야간 자율학습에 되도록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에 열중했던 삶도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딴생각들로 가득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그렇다고 시를 많이 쓰지도 않았다. 그 시절에도 때늦은 사춘기 호르몬은 내 감정을 온통 들쑤셔 댔고 나는 일렁거리는 파도를 타고 정처 없이 표류하는 배 같았다. 이런 나를 늘 안타깝게 바라보던 담임 선생님의 답답한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어느 날 흔하지 않게 교내 백일장 대회의 소식이 들렸다. 아마도 어버이날이었던 것 같다. 글의 주제가 ‘엄마’였다. 한 번도 엄마에 대해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무척 고뇌하다가 써냈던 게 생각난다. 그 작업이 꽤나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엄마에 대해서 글 쓰는 것이 좀 두려웠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엄마에 대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많은 고민 끝에 시를 썼지만 상을 받은 사람은 우리 반의 다른 친구였다.
며칠 후 학교 신문에 그 친구의 글이 공개가 되었다. 그 친구의 시를 읽고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엄마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 수 아니 몇 수 위의 시를 읽은 느낌이었다. 그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를 많이 써보지 않았던 나의 시와는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나는 꿈만 꾸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음속에 무수히 많은 주옥같은 시들을 떠올리면서 그것이 곧 나의 길이라고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은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좋다는 생각만으로 그것을 꿈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사건이었다.
일기도 쓰지 않았고,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하찮게 느껴졌다. 꿈같은 거, 이상 같은 거 그게 다 무슨 필요란 말인가? 잘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그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고3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컴퓨터 한 대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MS-DOS로 잠시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어로 된 도스 명령어를 모르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때 언니는 정보처리라는 과목을 배우고 있었는데 컴퓨터가 필요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얼마나 신기한 기기였는지 모른다. 기계가 고장이라도 날까 봐 처음엔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도 겁이 났었다. 왜냐하면 이 기계는 워낙 낯선 것이라 고장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서 몇 가지 기능을 익히고 나니 제법 재미있는 기계가 되었다. 어느새 나는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메타자교사>라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게임처럼 하고 놀았다. 특히 <베네치아> 낱말 게임은 스릴 넘치는 타자 연습용 오락이었다. 그러다가 도스 운영체제의 컴퓨터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작은 창으로 “윈도우”라는 것이 구동되기 시작했다. 어려운 도스 명령어를 알지 못해도 마우스로 클릭만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윈도우 운영체제의 모습이 그렇게 작은 창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니는 정보처리에 관한 학문을 학습하면서 익힌 컴퓨터를 나에게도 틈틈이 알려줬다. 한글과컴퓨터 초기 버전의 워드 프로그램도 언니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한글 타자를 익히고 몇 가지 기능을 배우면 깔끔하고 보기 좋은 문서가 완성되는 과정이 신기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격변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대가 맞물려 있었고, 아날로그는 서서히, 그러나 지금의 시선으로 볼 때, 무척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시인의 꿈도 그 시절 아날로그처럼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 꿈을 그냥 놓아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꿈으로 가는 길에 서있는 내가 낯설고 초라해져만 갔다. 동시처럼 맑았던 시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고, 시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 해졌다. 나는 끊임없이 기존의 훌륭한 시들과 내 시를 비교했고, 내 친구의 시와 내 시를 비교했다. 나는 그렇게 잘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과는 선택했어?”
“선택하고 말게 뭐 있겠어. 국문학과 가야지.”
“국문학과 졸업하면 뭐 하려고? 취업하기도 힘들 텐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게 왜 중요한 게 아니야? 취업 잘되는 학과를 나와야 좋은데 들어갈 수 있는 거야.”
“그래봤자 지방대인데 그게 그거 지.”
“이 바보야. 그러니까 더 좋은 과를 가야 되는 거야. 언니가 말하는 학과나 지망해.”
그러면서 내가 가려고 하는 대학교에 새로 신설되어 인기가 있다는 한 학과를 소개해줬다. 요즈음은 정보화 사회로 가는 길이니 이런 학과가 졸업 후 취업도 잘 될 것이라고 했다. 몇 번 그 학과 소개를 읽어봤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 학과에 지원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중학 시절부터 국문학과 외에 다른 선택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가 갑작스럽게 다른 학과를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한순간에 그런 선택을 한 그때의 나를 나는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후회를 하지 않은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른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은 듯한
풀이 무성하고 사람의 발길을 원하는 길이었기에
사람 발길로 닳은 건
두 길이 정말 비슷하기는 했지만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2연>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접했던 컴퓨터가 어느 정도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 것 같다는. 그래서 그와 관련된 학과에 끌렸을 것이란 생각을. 국문학과보다, 시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결론적으로, 나에게 컴퓨터 언어로 꽉 채워진 전공 수업들은 외계어를 접하는 것만큼 생소하고 어렵기만 했다. 내가 선택한 학과는 인문학과에 소속된 학과였지만, 수업 내용은 컴퓨터공학 전공과목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거기에 경영과 경제와 회계를 더해서 나에게는 더욱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다. 전공과목 학점에 F가 나오지 않도록 신경 쓰기에 급급 했었다. 그래야 졸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입학하고 한 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국문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후회하면서 나머지 대학 시절을 보냈다.
취업이 잘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세월들을 지냈다. 마음 한 곳에 자리한 내 꿈을 가끔 꺼내서 시를 써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로 향하는 주체하지 못할 분노와 온갖 감정들로 뒤범벅되어 썼던 시를 죄다 찢어서 버리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두곤 했다. 그럴수록 시는 나에게 너무 어렵고 힘든 존재가 되어갔다. 그냥 가끔씩 일기 같은 메모만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글쓰기 수업에 나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수필이라는 영역은 글쓰기 영역에서 그나마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분야인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삶의 굴곡을 지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힘을 많이 빼고 쓰는 것이 수필의 매력인 것 같다. 수필을 쓸 때는, 시를 쓰려다가 감정의 날을 세워 상처받던 그 과정과는 많이 다름을 느꼈다. 그 덕분이었을까? 시에 대한 예민했던 내 감정의 각들이 조금씩 무뎌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다시 시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나 또 상처받을까 싶어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휴대폰 노트에 적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유려하게 멋진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수필처럼 쉽게 다가서려고 한다. 이렇게 수십 년이나 지나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때 선택한 그 갈림길 앞으로.
나는 먼 훗날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선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4연>
나는 그때 하나의 길을 선택을 했었고, 후회를 했으며, 꿈과는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이 길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보려고 한다. 내가 꿈꾸었던 그 오래된 길로. 쉽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또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선택 앞에서 더 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길고 긴 길을 돌아 다시 만난 나의 꿈이 오랫동안 나의 곁에 머물길 바라 본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꿈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시인이어도 좋고 수필가여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