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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by 아리라

나는 게으른 편이다. 선천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막내라는 위치에서 뿌리내린 성격 같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우리 집에서 막내는 보호받고 챙김 받는 존재였다. 느긋한 성격은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이 성격은 그리 나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옆에 있는 사람의 속을 답답하게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나의 일처리를 보면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대부분 빠른 일처리를 해야 하는 단순 노동 같은 일을 할 때 특히 그렇다. 일을 끝마치지 못해서 쩔쩔매지는 않지만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120%의 힘을 끌어내서 하지는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느긋한 성격이 한몫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런대로 남들의 속도에 맞춰가지만, 집안에 있을 때는 열심히 살림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잘 치우지 않으려고 최소한만 어지럽히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설거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남들처럼 다양한 요리를 하고 진수성찬의 상차림을 차리는 것도 아닌데 설거지는 왜 그리도 많이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워킹맘들을 존경한다. 특히 슈퍼 워킹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육아며 살림까지 똑소리 나게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생활을 보거나 듣고 있자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한 가지 일만 잘하기도 힘이 드는데, 어떻게 여러 가지 일들을 잘 해낼 수 있는지 그들의 바지런함에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게으름이 더욱 초라하게 비치곤 했다. 그런 충격을 받은 날은 한동안 열심을 내어 보기도 한다. 내 딴 에는 110% 혹은 120% 정도의 에너지를 발산해 보는 것이다. 며칠을 못 가서 나는 나가떨어지곤 했다. 그런 일이 반복이 되면 쉽게 지치게 되어 더 무기력 해지는데 그 모습 때문에 더욱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관계란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나 SNS활동 등을 통해서 남들과의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나의 정신과 몸은 피폐해져 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도 못하고, 공황장애로 일상생활이 무너져서 보통의 생활마저도 제대로 못하게 된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상황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멈춰 서야 했다. 멈춰 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시점부터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10년 정도 공황장애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 선생님이 권해준 책들이 나를 알아가는 것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의 내용처럼 명쾌한 답이 있는 책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반감이 생기지 않아서 더 좋았다. 심리학 책에서부터 철학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책이, 연결되어 또 다른 여러 책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으로 소개받은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정 이야기다. 산티아고는 양치기였다. 양치기가 된 이유가 꽤 맘에 들었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아버지가 떠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양치기밖에 없다고 이야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반대하는 뜻으로 말을 한 것 같은데 주인공은 그렇다면 꼭 양치기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결심을 응원해 줬다. 금화까지 챙겨주며 그의 길을 축복해 주었다. 이 부분은 연금술사를 읽고 가장 마음속에 남은 장면 중 하나이다.


나는 딸이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이런저런 것들을 먼저 따져본다. 위험한 것은 아닌지, 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물론 이런 생각들은 부모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생각들이며 걱정이다. 그래도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생겼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들의 여정에 축복을 해주는 모습이 성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본받을 만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자아를 찾아서 계속 여행을 떠난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을 되뇌면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아간다.


연금술사 책에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다. 선생님이 나에게 이 책을 왜 권해줬을까 생각해 보았다.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지금 당장 도움이 될만한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추천해 준 이유가 굉장히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 책을 읽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고,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찾아가고 탐색하는 첫걸음이 되어 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다음 책은 스캇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가 오랜 시간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얻은 심리적인 성찰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영적인 성장, 자아의 성찰 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당면한 문제를 두려워하면서 피하려 든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는 문제를 잊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약을 복용하여, 결국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고통을 안겨준 문제를 잊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주변에서 맴돌려고 한다. 문제 안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문제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의 감정을 피하려는 이러한 성향이 정신병의 근본 원인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본문 중>


나 역시 책 속의 말처럼 문제를 피하기 급급하며 살아온 것 같다. 되도록 조용히 살고 싶고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을 그냥 지나치곤 했다. 또 남들과의 갈등을 겪기 싫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그냥 지나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겠지 내심 기대하면서. 하지만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더 큰 무게의 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훨씬 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은 훈육과 사랑에 관한 부분이다.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자신의 내면의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시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안내서이자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해 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나에게 많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강신주박사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철학적인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주변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시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철학 책이었다. 그렇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때론 나를 다그치기도 하는 것 같은 책이었다. 나를 찾는 과정,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철학인들의 이야기로 풀이한 책이다. 굉장히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바로 앞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피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일삼던 나에게, 문제를 피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하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


서로의 책들은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결국은 자신을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이자,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며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과 같다. 내가 나의 게으른 성격을 알고 이해한다면 바지런하지 못함에 좌절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게으른 자신을 위한 대안을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에너지를 많이 뺏기는 타입이라면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면 된다. 문제를 자꾸 피해 가려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면 조금 덜 힘들게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이런 모든 일들은 자기 자신을 먼저 알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 치여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나 자신을 탐색하고 알아가고 인정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없다. 정신적인 문제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 날 공황장애라는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많은 것들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치료와는 별개로 여러 가지 인문학책을 통하여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인정할 수 있게 되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현상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공황장애를 이겨냈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해 가며 나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덜 주는 쪽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맨 처음 할 일이고, 그것은 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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