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일랜드와 맞서다.

다시 시작하는 아일랜드 여행기 <비긴 어게인 아일랜드>



※ 2013년 처음으로 아일랜드에 입국한 밤의 이야기다.





한밤중에 입국해서, 픽업한 차를 타고 들어간 집. 집주인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으니 샤워하지 말고 짐도 내일 아침에 정리하라며 낮은 목소리로 짧은 공지사항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공허한 공기는 오로지 내 몫. 집 안의 소음지수는 좋음 상태. 첫인상에 스크래치 나는 게 싫어서 곧이곧대로 캐리어를 옆에 세운 채 코트만 벗고 침대에 누웠다. 시차 탓에 잠도 오지 않았다. 둘러보면, 모든 게 그들 방식대로다. 답답해도 창문을 열지 못하겠고, 방 한가운데 달린 등은 형광등이 아닌 백열등이다. 침대에 누울 때 비로소 신발을 벗을 수 있었다. 난방이 아닌 라디에이터가 일하는 중이라, 웃풍으로 코끝의 체온은 하락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본인이 선택해서 왔지만, 돌연 근본적인 입국 동기조차 잊었다. 8시간의 시차는 과거로의 회귀를 부른다. 후회의 감정까지 끌어왔다. 멘탈의 불안은 이자처럼 쌓였다. 좌불안석하며 침대에서 방황했다. 하늘이 검은 이유도 내 마음 상태요, 별이 숨어 있는 것도 내 감정이었다. 지금의 치료제는 ‘잠’이다. 불러도 대답은 없지만, 누우면 부지불식간 찾아올 거다.



눈뜨기 전, 이불 냄새가 훅 들어왔다. 후각의 낯섦이 온몸의 긴장으로 이어졌다. 걱정의 어둠은 거치고, 긍정의 밝은 하늘과 상견례를 했다. 닫혀 있는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야 하나, 누가 들어올 때까지 방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용기만이 다음 단계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리라.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바닥과 맞닿은 맨발. 카펫이지만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바로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집이지만, 낯선 나라의 기본 에티켓은 아는 만큼 행해야 했다. 밝아진 실내로 어젯밤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영어로 된 공지사항은 중요도 순으로 나열되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석하면서 수칙을 인지하였다. 지킬 수 없는 건 없었다. 기본 중의 기본을 말해주기에, 기본만 따르면 됐다.



IMG_3697.JPG 홈스테이 생활 수칙이 적힌 종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나가서 할 대화와 행동들도 미리 맞춰봤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화장실에 씻고 나온 외국인 남성과 마주쳤다. 내 시나리오에 이 등장인물은 없었다. 궁금한 게 많지만, 내 언어적 한계는 욕구마저 휘발시켰다. 단출한 인사만 하고 지나치고 싶었다. 불행히도 그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뭔가를 내뱉는데, 대부분 소화할 수 없었다. 의문형 문장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Yes'와 ’Okay'로 응대했다. 한 사람도 벅찬데, 1층에서 어제 잠시 봤던 주인아주머니가 올라오셨다. 두 명의 공격수가 허술한 수비망을 향해 돌진하는데, 속수무책 당할 것인가. 한 명만 맡자. 시선은 남성에서 아주머니에게로 갔고, 이전에 준비한 멘트를 쏟아냈다. 그녀가 말하기 전에 먼저. 인사말과 내가 누구인지. 20분간 준비한 말은 맥주 거품처럼 사라졌다. 이제 그녀의 말을 들을 차례. 그녀는 노련했다. 표정과 말투로 이미 내 영어 실력을 읽었다. 일찍 탄로 나서 다행이다. 또박또박 말씀하시면서 필요한 정보가 적힌 쪽지를 건네줬다. 다음 주부터 다닐 어학원에 가는 방법과 식사 시간, 지켜야 할 것들이 밀려왔다.



20130419_075747.jpg 홈스테이 맘이 적어준 메모



약 1달간 홈스테이 생활을 했다. 아일랜드 가정에서 먼저 적응하는 게 낫다는 유학원 관계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렇게 이행했다. 문 열자마자 만난 남성은 함께 홈스테이하는 독일 아저씨였고, 그 옆방에 일본인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3명이 2층 각자의 방에서 생활했고,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에 공식적으로 부엌에서 만난다.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와 시리얼로 해결하며, 계약 조건에 따라 샌드위치와 같은 점심을 홈스테이 맘이 미리 준비해줬다. 나는 해당 사항이 되며, 독일인 친구는 아니다. 각자 에이전시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 많은 정보가 들어왔지만, 제어능력이 부족해 천천히 방에 들어가 곱씹었다. 낯선 것들에 지쳐있을 때쯤 캐리어를 열어 익숙한 것에 치료를 받았다. 천천히 낯선 공간을 내 물건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낯섦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새로움은 두려움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 정화의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 보면, 방금 만난 두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본인 말만 늘어놓았던 게 아니라, 내 의견을 듣고자 배려한 눈빛이 보였다. 차분하게 아침의 일상을 돌려봤다.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본 내가 너무 창피했다. 부끄럽고 영어가 서툴러서 한 표정과 말과 행동. 그들에게 오해로 보인 건 아니었을까. 시차를 8시간 전으로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20130421_181134.jpg 함께 생활하는 독일인 친구


IMG_3637.JPG 아침식사는 토스트와 콘프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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