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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줄 탔던 경유지 게이트 사건

JTBC <비긴 어게인> 1회_아일랜드 찾아보기




00:05:08 직항이 없는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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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일랜드 행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건 출국일.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도 아니라서 날짜의 선택 폭이 넓어 오히려 선뜻 정할 수 없었다. 우선 티켓값이 비싼 주말을 제외하고 내가 갈 수 없는 날을 지워가면서 남은 날을 기준으로 선정, 티켓팅 할 준비를 마쳤다. 항공사 스케줄을 알아봤다. 직항이 없었다. 다른 여행사를 알아봤다. 역시나 최소 1개국을 경유해야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직행 노선이 없다. 변방이긴 변방인가 보다. 이웃 나라인 영국은 이미 직항 노선이 뚫렸지만, 아일랜드는 반드시 한 나라 이상을 경유해야 도착한다. 가기 불편한 나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곱씹어보니 난 그런 나라를 원했다. 남들이 많이 가고 익숙한 나라는 내 마인드에 어긋났다. 결국 선택한 아일랜드도 이런 B급 정서와 인식이 토대가 되었기에 말이다.






00:11:05 인천-암스테르담-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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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다양하다. 보통 경유하는 항공사는 KLM, 루프트한자, 에띠하드, 핀에어, 영국항공 등. 비긴 어게인 출연진들은 KLM을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더블린에 입성했다. 나의 첫 아일랜드도 KLM 항공기에 맡겼다. 유럽 자체가 낯설었던 내게 그 당시 Stopover로 하루 암스테르담을 머문다는 건 모험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낯섦에 다른 낯섦을 얹기 싫었다.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현상 유지하면서 더블린에 도착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였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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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다음 항공기 탑승 게이트를 찾았다. 지나가는 양 옆으로 스낵 형이 강하게 밀려왔다. 배가 고파 결국 앉았다. 식사를 하고 출발시간 10분 전에 게이트로 움직였는데, 중간에 Transfer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등골에 소름이 오르고, 발걸음이 바빠졌다. 불가사리처럼 퍼진 이동로에서 첫 판단이 중요하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방송에도 최대한 집중해 들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낯을 가리지만, 지금 그 성격이 밥을 먹여주는 상황이 아닌지라 보이는 사람마다 티켓을 보여주며 바른 행선지를 물었다. 결국 물어물어 온 게이트에 도착, 문제는 게이트 화면에 더블린이 없었다. 대신 바뀐 게이트 번호가 명시되었다. 가끔 기상악화나 연착으로 인해 스케줄이 변경되어 게이트 번호가 바뀌는데, 이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앞에 직원에게 물었더니 급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바뀐 게이트로 가란다. 서둘러서. 완전군장을 하고 훈련받았던 순간보다 더 간절히 뛰었다. 어깨에 얹어진 무게와 발목에 뭉쳐진 근육의 상태의 안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게이트가 변경되어 그런지 5분 정도 기다려줬다. 나 말고도 몇 명이 늦었는지, 내게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으며 승무원이 안심시킨다. 이제야 차올랐던 숨의 강도가 느껴졌다. 정신적 안정이 육체의 피로를 덮었다. 온몸에서 흐른 땀이 리트머스 종이에 물들 듯 모든 옷에 젖어 스며들었다. 승무원이 들고 있는 배낭이 70리터라서 따로 화물칸에 실어주겠다는 거였는데, 난 이해 못하고 왜 배낭을 가져가냐고 짧은 시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한 마무리였다. 그렇게 내 첫 경유지 여행은 부끄러움을 묻힌 채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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