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역사적 아픔을 로컬리티로 승화한 군산(1)






작년 여름, 전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다가 군산에 들르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도 그 당시 군산에 가본 적이 없어서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전주에서 에너지가 방전될 정도로 보낸 터라 여행 의지는 지극히 수동적이었다. 특별한 여행 테마도 없어서 주도적인 의견에 따라 움직였다. 군산 장미동, 월명동, 중앙동, 신창동 일대가 군산에서는 가장 유명한 관광지였다. 전주 한옥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국에 있다가 대한 해협을 건너 일본에 입도한 환영이 들 정도로 군산은 이국적이었다. 또한 전주 한옥마을은 전적으로 관광지란 인식이 강했지만, 군산 시내는 로컬들의 베드타운과 관광지가 공존했다. 현지인과 외지인이 동시에 생활하는 공간이란 점이 상생하는 지역 경제의 좋은 본보기처럼 보였다. 군산의 겉만 핥을 정도로 머물다 왔지만, 언젠가 전주의 부록이 아닌, 오롯이 군산만의 여행을 기획하고 싶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되었던 초원사진관



  





벼르고 벼른 군산 여행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군산행 열차를 타러 용산역에 도착했다. 용산역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예산, 대천, 장항, 군산을 지나 익산역까지 운행하는 <서해 금빛 열차>. 세계 최초의 온돌 마루 열차다. 작년 말에 이 열차의 존재를 알게 되어 추후 군산 여행에서 실현하고 싶었다. 완행열차인 만큼 제대로 ‘눕행열차’를 해보기로 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왕복 1회(용산역 출발 기준, 오전 8시 36분) 운행한다. 이 열차의 백미는 5호차인 ‘온돌 마루실’. 총 9호실로 이뤄져 있고, 3~6인이 이용 가능하다. 호실별로 온도조절이 가능하며, 편백 간이 탁자, 편백 베개, 등받이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특히 온돌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겨울이나 초봄에 이 열차가 인기다. 운행 편수가 적고, 온돌 칸을 선호하는 승객이 늘면서 승차율도 월등히 높아져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온돌 열차는 가족 여행을 기획하는 가장이 다른 구성원에게 칭찬받기 마땅한 아이템이다. 장항선 라인은 유독 목가적인 풍경이 창밖에 자주 등장한다. 산, 들판, 바다가 번갈아 연출되는 창밖 스크린을 보며 눈의 피로를 풀어보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물리적인 운행시간이 줄어드는 환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 운행하는 서해금빛열차



     

 


군산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은 가히 허허벌판이었다.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픈 욕구가 가득해 군산역과 가까운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군산은 한강 이남 지역 중 최초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도시다. 그 역사적인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2018년 구암 동산 3.1운동 역사 공원에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3.1운동 때 희생한 애국지사들의 얼굴과 기록을 보는 내내 엄숙함이 밀려왔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맞닿았던 비슷한 울컥함이었다.           




2018년에 개관한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100주년 기념관에서 나오면 비가 그칠 줄 알았다. 여전히 하늘은 울상이어서 근처 카페로 피신했다. 지역별로 오래된 농협창고는 인더스트리얼 복층 카페로 리모델링하기 좋은 구조다. 군산에도 베이커리 카페인 <미곡창고 SQUARE3.5>가 그 예다. 공공 비축미 사업 중단으로 용도폐기된 전북 군산농협 양곡창고를 카페로 재단장하였다. 이 카페는 군산 시내보다는 군산역에서 가깝다. 농협창고 외벽에 적힌 초록색 폰트는 어느 지역이든 지우지 않고 디자인으로 남겨놓는데, 미곡창고도 예외 없이 ‘협동생산 공동판매 농협창고’의 활자가 비가 와서 더 뚜렷하게 보였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갤러리 형태를 띠며, 제빵 공간과 커피를 내리는 공간이 구분되었다. 군산 지역 청년들에게 각종 바리스타 자격증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바리스타 사관학교처럼 카페가 운영되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주말 오전이라 홀로 공간을 독차지하며 과한 여유를 즐겼다.         



     

군산농협 양곡창고를 개조한 미곡창고 SQUARE3.5 카페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부산을 흔드는 것들 - 부산이 변하고 있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