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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픔을 로컬리티로 승화한 군산(2)






군산은 어떤 도시인가. 군산은 대표적인 항구도시다. 일찍이 1912년에 철로가 들어설 정도로 철도교통의 요충지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그 위로는 충남 서천군과 만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자동차로 약 2시간 40분 만에 도착한다. 군산은 지리적 조건이 탁월한 지역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일제는 군산항을 개항하여,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해갔다. 동시에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아 군산항 일대의 상권은 활성화되었다. 1914년에는 일본인이 전체 인구의 47% 차지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지대했었다. 여전히 일제강점기에 지은 가옥과 건물들이 남아 있고, 지금은 관광지로 역할 전환 중이다. 수탈의 역사였던 일제의 잔재가 도시재생에 이용해 관광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마냥 아름다움만 느끼기엔 참혹한 역사였기에 이 이국적인 정경을 이해하는 데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군산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

          



<여미랑>은 2012년부터 일본식 목재 가옥을 복원해 운영하는 대규모 게스트하우스다. 여미랑은 문자 그대로, ‘서럽고 억울했던 과거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다. 왜냐하면 여미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료의 가옥이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고우당> 카페를 방문했더니, 오전 식사를 마친 일행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일본 다다미방이 궁금한 어르신들이 이 숙소를 선호한다고 한다. 카페 반대편 문으로 연못을 품은 정원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중앙에 연못과 정원을 두고 검은 목조건물이 둘러싸는 구조였다. 숙소 외에 카페와 음식점이 목조건물에 입점해 있었다.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정원은 신비스럽고 영험해 보였다. 반대로 연못에서 주변을 훑어보면 목재 가옥 위로 현대오솔아파트가 언밸런스하게 마천루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 아파트의 과거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식 목재 가옥 게스트하우스 여미랑 건물과 내부

         






‘백화수복’은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주(祭酒)의 스테디셀러다. 명절마다 마트에서는 제수용품들과 함께 백화수복 청주를 눈높이 위치에 진열한다. ‘오래 살면서 길이 복을 누리라’라는 뜻대로 한 해를 보내기 전 연초에 건강과 복을 기리는 의미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기 좋은 술이다. 현재는 롯데칠성음료 군산공장에서 제조하여 전국적으로 판매하지만, 백화수복의 본 주인은 ‘백화양조’였다. 백화양조는 위스키 시장을 주도했던 ‘베리나인 VALLEY 9’을 생산하는 주류회사였다. 베리나인 브랜드는 1978년 주세법상 국내 최초 위스키 상표로 등록되었다. 위스키 원액에 주정을 섞어 만든 '베리나인골드'가 한창 시장을 점유하던 중, 패스포트 등 위스키 원액 100%로 제조한 국내위스키가 등장하자 베리나인골드의 판매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주류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백화양조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군산 월명동에 있었던 주류공장도 문을 닫았다. 회사는 공중분해됐지만, 베리나인 위스키를 빼고 1970~80년대 국산 위스키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주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공장이 철거된 그 자리에는 현대오솔아파트가 세워졌다. 백화양조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파트 앞에 세워진 조형물의 의미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조형물의 제목은 ‘즐거운 하루’. 과거 백화양조의 역사와 그 시절 길목을 지나다녔던 군산여고, 중앙여중, 군산여상의 여학생 교복에 모티브를 얻어 김형섭 작가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하였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월명동 현대오솔아파트를 찾아가 보길 바란다.    



      

현대오솔아파트와 백화양조 조형물

         







군산 여행을 계획한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 가장 위에는 ‘짬뽕’이 있다. 군산은 자타 공인 짬뽕의 성지다. 실제 짬뽕의 시초를 운운할 때 군산이 언급된다. 1890년대 후반, 군산으로 유입된 중국 산동 출신 화교들이 중화요리의 초마면에 고춧가루와 해산물을 넣어 매운 초마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를 짬뽕의 시작이라고 가장 유력하게 믿고 있다. 그래서 군산에는 짬뽕집이 성행해 미식가들에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가고 싶은 중국음식점은 많은데, 끼니의 숫자가 한정적이어서 선택하는데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짬뽕 특화거리 선봉장에 서 있는 <빈해원>이다. 나의 최애 영화 <타짜>가 선택의 가장 큰 단초 역할을 했다. 빈해원은 건물 자체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홀 안 자체가 장관이었다. 내부 관람만으로도 군산에서의 첫 끼를 빈해원에게 맡기길 잘 했다고 자평했었다. 주문한 군산삼선짬뽕은 해산물이 가득하고 텁텁하지 않은 시원한 국물이 특징이었다. 분명 준수한 맛이지만 군산의 3대 짬뽕이란 명성을 만족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의 경험들을 맛 평가에 추가해 주기로 했다. 아니 다음에 단체로 이것저것 주문해 먹고 재평가하기로 했다. 결국 재방문하고 싶다는 말이다. 배가 부르니 피로가 몰려왔다. 메고 있던 백팩을 놔줄 때가 됐다. 숙소의 컨디션을 확인할 겸 빈해원 인근에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짬뽕 특화거리에 있는 빈해원의 외부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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