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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픔을 로컬리티로 승화한 군산(3)





군산 여행 중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숙소였다. 스토리텔링이 담긴 숙소를 나열식으로 찾아본 후, 흘러온 역사와 공존하고 싶은 숙소를 찾았다. 선택은 <화담여관> 이었다. 지금은 황량해진 군산 가구거리를 지나 한적한 골목 속 흰색 외관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1932년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이며, 실제 1980년대까지 여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방치된 이 가옥을 현재 사장님이 리모델링하여 2017년부터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도미토리는 1층에, 내가 묵었던 1인실 다다미방은 2층에 마련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집의 내력이 적힌 상량문이 걸려 있었다. 공용공간, 도미토리, 공동부엌이 있는 1층은 현대식 인테리어로 꾸며놨으며, 2층은 올라가는 계단부터 고유의 일본식 가옥 형태를 최대한 살려 수리, 보수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숙소는 조용히 보내고 싶은 분에게만 추천한다. 저녁이 되면 주변 동네가 숨죽이듯 고요해진다. 방음시설을 갖췄다고 해도 목조건물 안에서 소리를 단속하기는 어려워 정숙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틀 밤을 묵는 동안 주변 소음 없이 조용히 지냈으며, 뜨듯한 다다미방에서 숙면하며 여독을 제대로 풀 수 있었다.              






화담여관 게스트하우스의 외관과 다다미방 내부

        


구도의 도시로 부산을 0순위로 꼽지만, 야구 민심이 부산만큼 강한 도시가 군산이다. 그 중심에 <군산 상업고등학교>가 있다. 군산상고는 과거 ‘역전의 명수’라는 불멸의 닉네임을 얻었다. 때는 1972년 7월 19일. 군산상고는 제26회 황금사자기 고교 야구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 전부터 영호남(상대팀은 부산고)의 라이벌 전으로 장외투쟁마저 들끓었다. 경기는 9회 말로 접어들었다. 패색이 짙었던 군산상고는 야구의 9회 말 2아웃부터란 야구 공식을 극적으로 풀어버렸다. 3점 차로 뒤진 상황을 역전타로 극복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순간부터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렸다.      


야구의 명문, 군산상고는 군산 시내에서 멀지 않았다. 군산상고 사거리에 다다르자 야구공 모양의 화단이 보였다. 여기부터 학교 정문까지를 ‘군산 야구의 거리’로 조성했다. 역대 군산상고를 거쳐 간 전설적인 선배들의 이력도 전시되었고, ‘역전의 명수’ 조형물도 보무당당하게 서 있었다. 동판에 새겨진 선배들의 핸드프린팅을 보는 순간, 학교 앞은 할리우드를 방불케 했다. 학교 운동장 전체가 야구장으로 할애되어 있다는 게 특이했다(다른 일반 학생들 체육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야구장 밖에 농구장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학교 위에 야구가 있을 정도로 야구에 진심인 군산상고. 호남 야구 자존심이기도 하다.              





군산 야구의 거리 전경

          


군산상고에서 좀 더 아랫동네로 내려갔다. 군산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가 있다. 군산 시내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군산대 근처 <은파호수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은파’는 사랑의 ‘빛’과 풍요의 ‘물’이 합쳐진 순수 우리말이다. 은파호수는 본래 농업용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동식물들의 자생지여서 자연 현장학습에도 탁월한 공원이다. 주간에는 로컬 시민들의 산책과 운동코스로 활용도가 높으며, 야간에는 물빛다리를 중심으로 야경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물빛다리는 은파호수에 전해져 오는 ‘중바우 전설’을 바탕으로 애기바우, 중바우, 개바우를 형상화하였다. 호수 둘레길은 약 9km 정도이며, 평균 2시간 30분 정도 할애해 걸어 완주할 수 있다. 공원 입구 쪽에는 예식장과 본 다빈치 뮤지엄 미술관이 있으며, 물빛다리를 지나면 파전에 막걸리를 판매하는 주점이 촌을 형성해 운영 중이다.   



  

           



은파호수공원과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물빛다리

          


정말 특별한 냉면집을 찾았다. 담백하게 오전 공복을 채우고 싶었다. 1954년생으로 67년의 세월 동안 3대가 만든 군산의 평양냉면집인 <뽀빠이 냉면>에 도착했다. 군산의 백년가게 중 하나다. 여기 냉면의 특징은 국물과 고명에 닭고기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사골육수에 생닭을 넣어 다시 끓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명 ‘검은 냉면’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평양냉면은 평랭성애자들에게도 호불호가 확실하다. 테이블에 앉고 5분 만에 물냉면이 나왔다. 구수한 닭 육수 향이 처음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면 위에 올려진 닭고기 고명도 인상적이었다. 식전에 마시는 육수는 간장 맛이 지배적이어서 내 취향이 아니다 싶었는데, 냉면 속 육수는 달랐다. 고기 고명은 다소 퍽퍽해 씹으면서 잘 부서졌다. 무김치가 달달한 편이라 먹다가 다소 질렸다. 전체적으로 닭 비린 맛이 전혀 없으며, 돼지와 닭 육수의 밸런스도 훌륭했다. 초계국수의 냉면 버전으로 이해하면 편할 것 같았다.           






뽀빠이 냉면의 간판과 평양냉면

          


벽화마을 조성은 도시재생사업의 ‘고전’이다. 2007년에 통영에서 한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공모전을 열었던 것이 지금의 벽화마을 사업의 전신이다.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필두로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서울 이화동의 벽화마을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서울 염리동 소금길의 경우, 우범지대이었던 골목에 벽화를 그리고 가로등을 증설해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 범죄율을 줄였다. 군산도 비슷한 마을이 존재한다. 신흥동 ‘말랭이 마을’이다. 고지대 언덕에 촘촘히 박혀 있는 낙후된 주거지 마을이란 점에서 통영의 동피랑과 성격이 비슷하다. 군산시가 말랭이 마을의 주거지를 보수해 문화 예술인들에게 레지던스 공간을 제공하였다. 마을 입구에 신흥 양조장이라는 막걸리 주조장이 보였다. 벽면 도색 콘셉트가 양조장인 줄 알았는데, 닫힌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실제 양조도구와 막걸리 페트병이 보였다. 개방되어 있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마을 중턱에는 푸른 물결로 도색한 독립 책방 <봄날의 산책>이 최근 개업했으며, 실제 배우 김수미 씨가 나고 자랐던 주거지도 관광지로 조성했다. 군산시의 지원과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신흥동 말랭이 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고 있었다.        





신흥동 말랭이 마을 입구와 책방 봄날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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