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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픔을 로컬리티로 승화한 군산(4)





연탄불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연신 나무젓가락 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달콤한 설탕 굽는 냄새. 세계적 흥행 기록을 세웠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속 달고나 뽑기 장면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레트로 감성으로 운영되었던 <경암동 철길마을>은 ‘달고나 골목’으로 불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 철길마을은 레트로 상품들을 판매하거나 근대화 시절 입었던 교복을 대여하면서 추억의 정취를 자극하는 상권으로 부각되었다. 실제 예전에는 신문용지를 실은 화물철도가 다니던 길이었고, 2008년에 폐선 되어 방치되었다가 관광지로 재개발되면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의 사이에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해 있지만, 골목 안에 들어서면 그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누구나의 ‘라떼’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레트로 관련 다양한 아이템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오징어 게임’ 이후 달고나 뽑기 구역이 워낙 많아져 천편일률적으로 변한 거리가 조금 아쉬웠다.          






경암동 철길 마을과 달고나 뽑기를 시연하는 장면

          


인문학 창고 및 북 카페 <정담>을 소개하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카페’, ‘고종황제 커피’, 캐릭터 ‘먹방이’. 이 건물은 1908년 군산 세관에서 창고의 목적으로 설립한 건물이다.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트러스 구조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세관 압수품들을 저장한 공간이라 비공개로 시설을 운영하다가, 2018년 12월부터 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지역 문화협동조합이 힘을 합쳐 북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먹방이’는 프렌치 불독을 캐릭터화한 것인데, 돼지코를 닮아 먹성이 좋게 생겼다고 해서 불리기 시작했다. 카페 안에는 캐릭터 굿즈가 생각보다 다양해 지역적으로 엄청 키워주는 효자상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종황제 커피와 먹방이 찰보리빵(군산흰찰쌀보리가 베이스)이 세트로 판매하고 있어서 바로 주저 없이 주문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인문학 강의나 행사를 하기 좋은 좌석 구조였다.



          




 인문학 창고 및 북 카페 정담의 내부와 캐릭터 먹방이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첫 빵’ 이야기를 해보자. 19세기 말, 한국으로 비밀리에 입국한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서 빵이 처음 구워졌다. 그렇다면 빵집은? 1945년에 창업한 이성당이, 대전 성심당(1956년), 대구 삼송 빵집(1957년)보다 앞섰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은 <이성당>이고, 군산은 ‘빵의 도시’가 되었다. 1920년대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가 운영하던 이즈모야 화과자점에서 사탕과 아이스케키를 판매한 기록이 이성당의 시작이다. 이후 ‘야채빵’과 ‘단팥빵’이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고 현재는 다양한 현대식 빵을 개발, 생산 중이다. 주말 낮,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는 손님들로 인산인해였다. 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게 저 정도의 기다림은 부질없다고 생각해 지나쳤다. 해가 진 늦은 저녁, 숙소로 가는 길에 이성당을 다시 만났다. 여전히 업장 안은 불야성이고, 인내심 강한 사람들의 기다림은 여전했다. 그렇게 이성당은 이번 여행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서울로 떠나기 바로 직전인 월요일 오전 9시, 세 번째 이성당과 조우했다. 웬걸, 대기하는 줄도 없을뿐더러 매장 안의 인구밀도도 극도로 낮았다. 아침식사를 거하게 했지만 때는 이때다 싶어, 빵 두 개를 디저트로 욱여넣었다. 삼고초려의 성취감이 얹어진 맛은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과 시그니처 메뉴인 야채빵과 단팥빵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던 아욱국은 진짜 아욱국이 아니었다. 오전 식사를 두 끼(결국 디저트로 이성당 빵까지 클리어) 먹으려고, 첫 끼를 다소 가볍다고 생각한 아욱국으로 정했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향한 곳은 <일신옥>이다. 아욱국과 콩나물국만 취급하는 식당이다. 작년까지 5,000원을 고수하다가 올해 다시 방문했더니 6,000원으로 인상되었다. 1,000원이 올라도 가성비에 흠뻑 젖어 나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극 없이 개운하게 해장하기 너무도 좋은 국물이었다. 슴슴한 국물 맛만 봐도 화학조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 자극적인 맛을 원하면 기호에 맞게 새우젓과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보자. 이른 새벽이라 모두 혼자 온 손님들이 TV 쪽 한 방향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취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식사를 원한다면, 한일옥 소고기뭇국과 일신옥 중에 고민해 보길 추천한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하기 좋은 일신옥, 아욱국

          

군산 시내는 ‘숨은 채만식 찾기’처럼 채만식 작가의 글귀와 이야기가 녹아있다. 채만식은 군산을 대표하는 1930년대 최고의 풍자소설가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탁류’는 옥구평야와 김제평야에서 나는 쌀을 일본이 군산항을 통해 수탈해 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식민지 자본주의에 휩쓸린 조선 민중들의 비극을 통해,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탁류는 ‘탁하게 흐르는 강물’이라는 뜻이다. 금강의 혼탁한 물줄기를 상징화한 것이다. 채만식문학관은 채만식 소설가의 전부를 기록, 전시한 전시관으로, 금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마련되어 있었다.     



        



금강을 바라보며 지어진 채만식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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