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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로드트래블 <056. 박서보 개인전>





일시: 2021. 9. 15. ~ 2021. 10. 31.

장소: 국제갤러리 서울  



   



박서보 작가는 한국 추상화의 대가이자, 세계적 ‘단색화’의 선구자다. 그의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면 권태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빛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     


박서보의 회화에서 색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후 시기의 원형질 연작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표현한 검은색, 1960년대 후반 서양의 기하학적 추상에 대응해 전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유전질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오방색, 그리고 1970년대에 ‘비워 냄’을 몸소 실천한 연필 묘법 연작에서는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이후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급진적인 시도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새로운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과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이 현대인들 누구나 겪는 시대적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을 녹인 작업을 이어오던 그에게 ‘더 이상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고, 이는 스스로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었는데, 그 끝에서 작가가 찾은 돌파구는 다시금 색이었다.     


각종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범람하는 시대, 회화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색채 묘법 연작에서 회화는 더이상 자기표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의도된 경험을 강요하거나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화면에 정적인 고요함과 리듬감 있는 활력만을 남겨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흡인(吸引)하는 장을 만든다.     


이는 그가 스스로의 작품을 ‘흡인지’라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가 단색화를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과정에서 생성된 흔적(물성)을 정신화 하는 것”의 세 가지 요소로 정의 내린 사실도 이 같은 회화의 새로운 역할을 뒷받침한다.     


색의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박서보 작가는 ‘주체와 대상,’ ‘인간과 자연’ 등의 대립항들로 분류해 접근하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명명법에 도전해왔다. 색을 일컬을 때 도식화된 컬러판을 참고하는 대신 주로 자연을 칭하는 일반명사들을 차용한 건 그런 일환일 것이다. 이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색이 단수가 아니라 대상이 전하는 뉘앙스까지 포괄하는 온전하고 종합적인 색(감)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관람객의 체험을 전제로 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서도 삼청동의 풍경을 면하고 있는 창이 난 K1 공간에서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을, 그리고 K1의 안쪽 전시장에서는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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