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일류돼지국밥집, 베르크 Werk, 부산현대미술관
나에게 부산은 낯선 듯, 동시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연인 같았다. 첫 만남은 20대 초반, 의외로 늦은 나이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홍대의 작은 클럽에서 만난 밴드 자우림의 보컬에 사로잡혔던 나는 그들의 대형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군 휴가를 부산 일정에 맞췄다. 그러나 그날의 부산은 자우림이라는 빛에 가려져,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만 번져 있다.
진짜 부산과 마주한 것은 제대 전 말년 휴가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시네마 키즈였던 나는, 정보 하나라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무궁화호 창문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마치 새로운 챕터를 여는 듯했고,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는 이미 영화적 아우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해운대와 남포동, 요트경기장, 센텀시티—부산의 주요 극장을 누비며 영화를 본다는 것은 곧 도시의 맥박을 내 발로 밟아보는 일이었다. 1호선과 2호선을 주야장천 오가며, 부산의 골목과 바람과 냄새는 서서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공식적인 나의 첫 부산 여행은 2002년 늦가을, 영화라는 렌즈를 통해 시작되었다.
부산은 도착하자마자 특유의 내음을 풍겼다. 흔히 ‘바다의 짠내’라 표현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후각의 경험을 넘어, 서울과는 전혀 다른 생활의 밀도를 증명하는 향이었다. 몸은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귀는 사투리의 억양에 낯섦을 느꼈다. 그러나 미각만큼은 부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늘 부산역 돼지국밥 한 그릇이 모든 긴장을 풀어내던 순간—그것이야말로 부산이 내게 내민 첫 악수였다.
부산은 더 이상 ‘해운대 해수욕장’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각 구마다 또렷한 개성을 품은 상징들이 생겨나며, 마치 원곡을 리믹스한 듯 새로운 버전의 부산이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난개발이라는 불협화음도 있지만, 세련된 안목으로 빚어진 공간들은 도시의 조율된 선율을 완성해간다.
이번엔 특별히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김포에서 김해까지 45분 남짓—하늘길은 시간의 주름을 접듯 빠르게 열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향한 곳은 언제나 그렇듯 국밥집이었다. 괘법동의 <합천일류돼지국밥집>. 점심 전부터 웨이팅이 늘어선 풍경은 이곳이 이미 작은 성지임을 증명했다. 피순대의 두툼한 질감과, 마늘이 산처럼 올려진 국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부산이 내게 건네는 의례와도 같았다.
포만감 뒤에 찾아온 나른함을 깨운 것은 전포동의 카페 거리였다. 이곳은 코로나 시기에도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곳이다. 내가 향한 곳은 <베르크 Werk>. 지하의 어둠 속에서 주문한 커피를, 햇살이 성당처럼 쏟아져 내리는 2층에서 마셨다.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흘러드는 빛은 차갑고도 따뜻했으며, 순간 나는 독일 수도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지하와 지상의 대비는 지옥과 천국처럼, 한 잔의 커피는 은총처럼 내 입안에 번졌다.
도시의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 을숙도에 세워진 <부산현대미술관>이 기다린다. 자연의 섬 한가운데서 열리는 전시는 고전적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오히려 첨단의 언어로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이창진의 작품 <번개>는 리얼리티의 경이로움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전시 <그 후, 그 뒤, Posteriority>는 해양 쓰레기가 만들어낸 기묘한 생태계를 보여주며 인류의 미래를 질문했다. 해파리의 일생을 18분 동안 체험하는 영상은 시간 자체를 재구성하는 실험이었고, VR 체험 <수리솔>은 바닷속 미래 환경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속에서 나는 바다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과 마주했다.
부산은 언제나 첫 만남처럼 낯설고, 매번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영화와 음악, 국밥과 커피, 그리고 바다가 품은 예술까지—그 모든 것이 다시 편곡된 선율처럼 나를 감싼다. 결국 부산은, 바다의 짠내와 국밥의 온기, 그리고 미래를 묻는 예술 사이에서 늘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