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동 철길마을, 정담, 이성당, 일신옥, 채만식문학관
연탄불 앞에 아이와 어른이 한데 모여 있었다. 나무젓가락 끝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설탕, 연신 젓는 손길 속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이 피어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쓸며 다시 불러낸 풍경이었다. 그 덕에 <경암동 철길마을>은 이제 ‘달고나 골목’이라 불리고 있었다.
한때 신문용지를 실어 나르던 화물철도가 다니던 이 길은 2008년 폐선된 뒤 방치되었다가, 지금은 레트로 관광지로 다시 태어났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마트 사이, 다소 애매한 위치이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는 순식간에 변한다. 누구나의 ‘라떼’ 시절이 시작되는 공간. 작년만 해도 교복 대여와 추억의 아이템들이 즐비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오징어 게임 열풍 이후 달고나 뽑기가 거리를 점령해버려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달콤한 연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만큼은 여전했다.
군산의 오래된 건물은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살아난다. 1908년 군산 세관의 압수품 창고로 지어진 건물은 지금 인문학 창고 겸 북카페 <정담>으로 변모했다.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트러스 구조의 건축물 안에서 고종황제가 즐겼다는 커피가 메뉴판에 있었다. 프렌치 불독 캐릭터 ‘먹방이’가 새겨진 굿즈들은 의외로 다양했고, 카페의 작은 효자상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고종황제 커피와 먹방이 찰보리빵을 주문했다. 군산 흰찰보리가 베이스인 빵은 의외로 담백했고, 카페 내부는 인문학 강연과 북토크를 열기에 적당한 구조였다. 오래된 건물이 문학의 서가가 되고, 빵과 커피가 책갈피처럼 사람들의 기억을 이어주는 풍경은 그 자체로 군산의 또 다른 이야기였다.
군산이 ‘빵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최초의 빵집 <이성당>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자점에서 시작해, 해방 이후 ‘야채빵’과 ‘단팥빵’을 내놓으며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대전 성심당이나 대구 삼송빵집보다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주말 낮, 매장 앞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줄로 가득했다. 빵에 큰 애착이 없는 나는 지나쳤지만, 세 번째 만남에서는 결국 굴복했다.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 덕분에 줄은 사라지고 매장 안은 여유로웠다. 결국 두 개의 빵을 ‘디저트’라 우기며 욱여넣었다. 빵 맛보다도 삼고초려 끝에 얻은 성취감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군산의 아침은 국물에서 시작된다. 새벽 여섯 시, <일신옥>의 문 앞에 섰다. 메뉴는 단출했다. 아욱국과 콩나물국, 단 두 가지. 가격은 6천 원, 화학조미료의 자극 없는 맑은 국물은 해장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기호에 따라 새우젓과 고춧가루를 더해 입맛을 맞출 수 있었고, 국물 한 숟갈마다 어머니의 밥상이 떠올랐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들은 모두 혼자였다. TV 화면을 바라보며 묵묵히 국물만 들이켰다. 군산의 하루는 그렇게 말없이, 뜨거운 국물로 열렸다.
군산 시내를 거닐다 보면 ‘숨은 채만식 찾기’ 놀이처럼 그의 글귀와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1930년대 풍자소설가 채만식. 그의 대표작 『탁류』는 옥구·김제 평야의 쌀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당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탁류’는 말 그대로 ‘탁하게 흐르는 강물’, 금강의 혼탁한 물줄기를 은유한 제목이었다.
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한 <채만식문학관>은 그의 삶과 문학을 전시한다. 식민지 자본주의에 휩쓸린 민중들의 비극과 인간의 타락상을 고발한 문장은 지금도 여전히 날카롭게 읽힌다. 군산의 빵과 국물이 일상의 위로라면, 채만식의 문학은 그 위로에 균열을 내는 역사적 성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