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산재
한국의 지역마다 자리한 민간정원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조용한 대화처다. 크고 작은 산맥과 들판, 강과 바다가 서로 다른 모습을 이루듯, 민간정원도 각 지역의 정서와 풍토를 따라 고유의 표정을 짓는다. 이름 없는 동네 골목을 지나, 마을 어귀의 낮은 돌담을 끼고 걷다 보면 문득 만나게 되는 정원들은, 소란스럽지 않게 마음을 멈추게 한다. 정원을 가꾸는 이는 자연을 닮은 인내로 시간을 쌓아 올리고, 그 안에서 자라는 나무와 꽃, 바람과 빛은 스스로의 언어로 계절을 노래한다. 민간정원에서는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왜냐하면 제한된 인원으로 출입을 통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구례 상사마을 깊은 품 안에 조용히 자리한 <쌍산재>는 200년이 넘는 고택과 전통 정원을 품은 비밀 장소다. 구례 시내에서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시내에서 천천히 약 1시간 정도 걸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에 동네를 순찰할 겸 걸었다. 해주 오씨 문양공 후손의 아호를 딴 이 서재는, 한때 가풍이 깃들었던 학문과 풍류의 공간이 이제는 민간정원으로 우리 곁에 공개되었다.
쌍산재는 2018년 전남도 제5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 부지 약 9,852평에 녹지 면적만 약 8,355평에 이른다. 고택 안채·사랑채·별채·서당채·경암당 등 15채의 한옥이 대나무 숲·차밭·동백 터널·잔디광장·저수지와 어우러져, 문화와 자연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이다. 이곳의 시작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당몰샘’이다. 언제나 맑고 찬 이 샘물은 지독한 가뭄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켰으며, ‘마시면 팔십 세까지 산다’는 전설이 흐른다. 샘물을 품은 마을은 최장수 마을로도 알려져, 샘의 신비는 자연과 삶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관람 방법은 단순하지만 정성스럽다. 입장 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며, 금액은 성인 1만 원(소인은 5천 원), 웰컴 티 한 잔이 포함된다. 정원을 따라 들어서면 먼저 대나무 숲의 울림이 손짓하고, 돌계단을 오르면 동백나무 터널 너머 탁 트인 잔디들판과 옥빛 저수지가 펼쳐진다. 이미 좋은 자리들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추천 코스는 대문에서 안채, 사랑채를 지나 서당채와 경암당으로 올라가는 순서다. 이 길을 따라 한옥의 고즈넉한 마루를 쉼터 삼아 차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다.
어느 날, 방송의 한 장면이 이 조용한 공간을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바로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였다. ‘윤스테이’는 전통 한옥에서 외국인 손님을 맞아 한국의 정서와 따뜻한 환대를 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에서는 쌍산재의 매력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 속의 정적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안에서 차려진 식사와 환대의 태도를 통해, 시청자에게 그 장소의 아름다움을 스며들게 했다. 방송에서 그랬듯, 이곳은 민박도 가능한 고택이다. 숙박은 입실 오후 5시, 퇴실 오전 10시 기준이며, 10만~20만 원대다. 사전 예약이 필수다.
쌍산재는 단순히 둘러보는 정원이 아니다. 선조의 삶과 자연의 숨결이 균형을 이루는 풍경 속에서, 방문자는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무게를 함께 느끼게 된다. 한옥 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림자, 돌계단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 차 한 잔을 머금는 순간의 고요함이 말없이 마음을 열게 한다. 현대의 분주함 속에서 잊기 쉬운 여유와 성찰을 되살리는 곳이다.
민간정원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자, 시대를 건너는 풍경이다. 거창한 구조도, 유명한 조경가의 손길도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민간정원을 특별하게 만든다. 삶과 계절을 담은 평범한 정원들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손길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잊고 지낸 느림과 기다림, 그리고 자연에의 예의를 되새기게 된다. 민간정원은 그렇게 오늘도 어느 동네 담장 너머,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운영을 종료하는 시간 까지 꽉 채워 공간에 머물다 나왔다. 방문하는 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