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 한 잔에 대서양을, 한 입에 항구를

남산 와이너리








해외여행은 종종 ‘귀환 후의 유배’를 선물한다. 몸은 한국에 돌아왔지만, 영혼은 여전히 여행지에 장기체류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상은 서울의 골목에 있지만, 감각은 여전히 대서양의 바람과 좁은 언덕길에 머무른다. 특히, 큰 기대 없이 떠났다가 뜻밖의 감흥을 안겨준 나라일수록 그 여운은 깊고 오래간다. 나에게 그 나라는 바로 포르투갈이었다.


2018년, 3개월간의 유럽 배낭여행 중 보름을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보냈다. 넉넉지 않은 체류 자금 탓에 호스텔 도미토리에 묵으며 직접 장을 봐 끼니를 해결하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에는 예외를 두었다. 포르투의 와인이었다. 도우루강 가이아 지구의 포트와이너리를 무려 18군데나 들렀다. 생수로 갈증을 달래고, 강가에 드러누워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와인잔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무모한 청춘의 방식이었지만, 그때의 포르투갈은 분명 나를 사로잡았다. 다만 음식의 깊은 결은 놓치고 돌아온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마음껏 먹고 마셨다. 바다와 맞닿은 나라답게, 식탁 위에는 늘 풍부한 해산물이 올랐다. ‘바칼라우(대구)’를 비롯한 다양한 생선 요리와 문어 요리, 그리고 와인의 조화는 놀라울 만큼 한국인의 입맛과 닮아 있었다.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요리만으로 나를 다시 부른 국가는 포르투갈이 유일했다. 귀국 후에도 그 맛의 잔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혀끝에 남은 바닷바람처럼. 주변에도 포르투갈 요리를 권했고, 누군가가 서울의 포르투갈 레스토랑을 귀띔해주었다.


비 내리는 어느 오후, 나는 이태원 경리단길의 골목으로 향했다. 포르투갈에서도 늘 비를 맞았던 기억 탓일까. 빗속을 걷는 발걸음조차 리스본의 어느 언덕길 같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름부터 특별한 <남산 와이너리>였다.


간판의 ‘와이너리’는 허명이 아니었다. 주인장은 직접 포르투갈 와인을 들여와 잔과 병 사이로 대서양을 흐르게 했다. 소규모 생산자의 테루아를 담은 와인, 그 와인에 맞춰 내는 한 접시의 요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포르투갈 주파수’를 맞춘 송신소 같았다. 도심의 소음을 잠시 끄고, 바다의 염분과 햇살을 테이블 위에 불러오는 방식이었다.


일행과 자리가 채워지고, 주문이 이어졌다. 나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을 고백했다. 비뉴 베르드(그린 와인), 삶아낸 문어 요리 폴뽀, 바칼라우와 감자로 만든 고소한 파스텔 드 바칼라우, 그리고 모두가 동의한 바칼라우 파스타. 잔을 기울일 때마다, 접시에 포크를 찌를 때마다, 그 순간은 다시 포르투갈이었다. 창밖의 빗소리마저 도우루강의 물결처럼 들렸다.


남산 와이너리는 서울 한가운데에서 대서양을 호출하는 작은 항구였다. 숨어 있는 골목, 낮은 불빛, 합리적인 와인 가격, 그리고 포르투갈에 대한 집요한 사랑이 이 집의 이름을 정당하게 했다. 헤어질 때 대표와 악수를 나누며 “있어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남겼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레스토랑을 나와 차도로 내려오는 골목마저 포르투갈의 필름처럼 이어졌다. 평소 유난 떠는 일은 야구 응원 정도였는데, 그날은 포르투갈을 향한 찬가를 끝없이 읊조렸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완성일지 모른다. 행복하면, 충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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