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움
햇살이 은은하게 대웅전 안으로 스며들던 어느 오후, 나는 눈을 감고 잔잔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 스님의 목탁 소리가 들렸다. 귓가를 두드리던 규칙적인 울림은, 마음속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를 하나씩 털어내는 듯했다. 그 이후로 도시의 소란 속에서도 나는 소리의 위로를 찾아 나섰다. 비 오는 날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리듬, 바닷가 모래를 안고 흩어지는 파도의 숨결, 오래된 LP판에서 새어 나오는 바스락거림조차도 내 마음을 다독이는 언어였다. 소리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와 피로를 알아채고 묵묵히 감싸주는 또 하나의 언어, 그리고 내가 쉼을 배우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통로였다.
그런 내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공간이 있다. 2024년, 양재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오디오전문 박물관 <오디움 Audeum>이다. KCC 그룹 창업주의 유산과 사재로 세워진 이 박물관은 150여 년에 걸친 오디오 기술의 발전사를 수집·보존·연구하며 대중과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유는 전시와 체험이 결합된 몰입형 공간 투어를 무료로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최고의 음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설립의 취지였기 때문이다. 약 1년을 기다려 예약을 시도해 성공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마포에서 양재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도심이 아닌 양재꽃시장보다도 한적한 남쪽으로 가야했다. 그렇게 도착해 건물을 바라봤다. 박물관의 외관은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수만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가 건물을 감싸 숲 같은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뤘다. 내부는 높은 층고와 목재, 흡음재 설계를 통해 최적의 음향 환경을 구현했다. 그곳에서 나는 축음기와 뮤직박스,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10만 장에 이르는 LP 소장품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을 수 있었다.
투어는 박물관의 도슨트가 이끌었다. 그는 과거 방송국의 음향 엔지니어 출신이라 했는데, 설명마다 오디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배어 있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직접 기기를 작동시키고 음악을 들려주며 안내하는 여정은 하나의 공연 같았다. 100년이 넘은 스피커가 실제로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시간을 건너뛰어 1920년대 유성영화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웨스턴 일렉트릭, 클랑필름 등 역사적인 장비를 통해 들려오는 사운드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극장용 혼 스피커로 들은 두 곡이었다. 백지영의 ‘무시로’, 그리고 비틀즈의 ‘Yesterday’. 스피커 너머로 쏟아져 나온 목소리는 마치 가수가 바로 눈앞에서 노래하는 듯 가슴을 울렸다. 백지영의 간절함은 공간 전체를 떨리게 했고, 비틀즈의 서정성은 오랜 추억을 소환했다. 눈가가 젖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음악이 내 안의 가장 깊은 결을 건드린 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전시된 스피커들 속에서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제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균형 잡힌 합창이라기보다 특정 파트의 선율이 짙게 배어 나온 듯한 인상이었다. 전문 지식이 많지 않은 내게도 그 편중은 분명히 느껴졌다. 어쩌면 이는 수집가의 강렬한 애정이자, 집요한 열정이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좋은 스피커에서의 청음은 오래된 유리잔에 맑은 샘물을 담아 마시는 순간과 닮아 있다. 물의 본래 맛은 같지만, 그릇의 품격이 경험을 한층 깊게 만드는 것처럼, 음악도 좋은 스피커를 통해서만 비로소 본연의 깊이를 드러낸다. 잡음 없는 맑은 울림 속에서 현악기의 떨림은 내 심장의 맥박과 겹치고, 보컬의 호흡은 내 호흡과 뒤섞인다. 잊고 있던 감정의 결들이 선명히 드러나며,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운다.
오디움에서의 경험은 소리와 내가 서로를 알아보는 의식이자, 삶 전체로 음악을 마시는 의례였다. 소리는 파동을 넘어선 언어였다. 그 언어 속에서 나는 쉼을 배우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좋은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