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 | 발효에 철학을 얹은 선구자

복순도가 양조장







내가 술을 배우기 시작한 2013년, 수업 시간에 잊을 수 없는 광고 영상을 하나 보았다. 화면 속에서 잔잔히 터져 오르는 탄산의 기포는 마치 별빛이 흩어지는 듯했고, 그것이 바로 <복순도가>의 제품 광고였다. 당시만 해도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말은 생소했다. 대부분의 양조장이 여전히 감미료와 대량생산에 집중하던 시절, 복순도가는 강렬한 탄산감을 전면에 내세우며 프리미엄 전통주라는 새로운 지평에 한 주축을 맡았다. ‘손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전통의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그들의 시도는 한국 전통주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내가 그때 처음 택배로 주문했던 막걸리가 복순도가였다. 여섯 병을 받아들고는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한국에도 이런 막걸리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알렸다. 하지만 복순도가는 만만치 않은 술이다. 병을 잘못 흔들었다가는 천장을 향해 흰 분수가 뿜어져 올라갔고, 민망한 웃음으로 무마해야 했다. 나도 시행착오 끝에 가스를 천천히 빼내며 유려하게 개봉할 수 있게 되자,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었다. 술을 여는 순간이 곧 하나의 의식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장면에 머물렀다.

거의 10년이 흐른 뒤, 다시 울진의 복순도가 양조장을 찾았다. 2013년 단체 관람으로 찾았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홀로, 천천히 양조장의 호흡을 느껴보고자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사무실 한켠에서 시음을 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별도의 시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전 9시, 혹시나 성가신 방문객은 아닐까 머뭇거렸으나 직원은 오히려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았다. 새로운 제품을 여럿 소개받고, 직접 맛보며, 한 모금마다 쌓여온 정성을 음미했다. 그리고 양조장 주변을 천천히 거닐다가, 문득 이곳 건축이 주는 울림을 다시금 확인했다. 검은빛 외관은 무채색의 중후함을 간직하고 있었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나라 양조장 건축물 가운데 여전히 가장 아름답다.’


복순도가는 단순히 막걸리를 빚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의 건축은 발효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건물의 숨결로 드러냈다. 화려한 장식은 배제되고, 바람과 빛, 나무와 돌이 주재료가 되어 울진의 자연과 호흡하고 있다. 발효가 자연의 원리에 기대어 이루어지듯, 이 건물 역시 자연을 벗 삼아 술을 품고 있다. 술을 마시는 이의 경험 또한 공간 속에 녹아들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시간이 서로를 포개어 안는다.


결국 복순도가의 철학은 술을 통해 자연·시간·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이곳에서 한 잔의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발효가 들려주는 삶의 은유다. 병을 따는 순간은 기다림의 미학이고, 건축은 그 철학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액자다. 복순도가를 찾는 사람은 술을 마신다기보다 술이 태어나는 풍경, 그 풍경에 담긴 가치관을 함께 들이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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