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 수마가 핥퀴고 간 서점

섬진강책사랑방 서점








요즘처럼 습도가 가파르게 오르는 날씨에는 기온 상승보다 오히려 습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여름만큼은 유럽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가정이 많을 정도로 여름에도 30도를 넘지 않는 선선한 기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습도가 낮아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하고, 방 안에서 제습기를 돌릴 일은 거의 없다.


습도가 높은 날, 비까지 내리면 주변이 젖는 게 괜히 신경 쓰인다. 특히 운동화가 젖는 걸 싫어해 비 예보가 있는 날에는 신발 고르기에 유난히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모아온 종이책들이 젖거나 눅눅해질까 봐 예민해진다. 가방 속 책이 비에 젖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책 한 권만으로도 이런데, 내가 소중히 아껴온 장서들이 모두 물에 젖고 훼손된다면 그 상실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구례 섬진강변에 있는 책방에 다녀왔다. 예전 모텔 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구례구역을 마주하고 섬진강이 흐르는 강가에 자리해 있다. 주변에는 참게탕집들이 성업 중이고, 그 사이로 투박한 3층짜리 책방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은 <섬진강책사랑방>.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온 기억과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다.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풍경처럼 이곳의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이 책방의 전신은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있던 <대우서점>이다. 1978년에 문을 연 대우서점은 당시 도심 속 문화의 산실로 불렸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인근 학교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독립서점의 생존은 점차 위태로워졌다. 책방지기는 구례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지만, 남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쌓인 섬진강에 대한 추억을 따라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약 20만 권의 장서를 트럭 30여 대에 나누어 실어 나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2020년 여름, 대우서점은 예상치 못한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약 1만 권의 책이 물에 젖어 훼손되었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채운 공간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단순한 물적 피해가 아니라,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침묵 같았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이 곧 삶이었던 그는 온 힘을 다해 복구에 나섰고, 결국 서점은 이름을 바꾸어 <섬진강책사랑방>으로 다시 태어났다. 2022년, 구례에서 새로운 첫 장을 열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섬진강책사랑방의 운영 철학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신간보다는 중고책 중심으로, 대우서점 시절부터 소장하던 책이나 기증받은 책들을 판매한다. 상업적 목적보다는 독서 문화의 확산과 사람과 사람을 책으로 잇는 데 초점을 둔다. 일부 도서는 판매보다는 열람용으로 비치되며, 방문객들이 편안히 책을 읽고 쉴 수 있도록 공간 곳곳에 여유를 두었다. 2층에서는 창을 통해 섬진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책방의 각 챕터를 둘러보고 있을 때, 책방지기님이 조용히 다가와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그는 책방의 취지를 '느린 삶 속 깊은 독서'에 둔다고 말했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와 디지털 중심의 문화 속에서 잠시 벗어나,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 중 대부분은 특별한 목적 없이 들렀다가, 무심히 뽑은 책 한 권에 마음을 놓고 간다. 책은 그렇게 사람을 위로하고, 다시 길을 찾게 해준다. 3층에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책뭉치들이 제멋대로 놓여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구례의 한적한 시골길에서, <섬진강책사랑방>은 오늘도 묵묵히 이야기를 지켜내고 있다. 대우서점에서 시작된 그 긴 이야기처럼, 이곳에서 책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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