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 <소문난 동래파전>
11년 전, 나는 홍대의 작은 술집에서 주말 매니저로 일했다. 주점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해, 한국 전통주를 배우고 나서 전통주점의 현장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지인 누나에게 제안을 했던 것이다. 매일 출근길마다 시음했던 술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지평, 해창, 송명섭, 검은콩, 알밤, 개도, 은자골 탁배기, 자희향, 복순도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누나가 사랑했던 부산산성막걸리였다. 특이하게도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숙성된 산성막걸리를 단골들과 함께 즐겼다. 그 시절, 내 입맛도 그 새콤한 깊이를 배워갔다.
지금도 새로운 동네에 가면 그 고장의 술을 마시는 습관을 지키려 한다. 예전에는 그 열정이 더 뜨거워, 여행을 갈 때마다 막걸리를 사 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우리나라에도 장수막걸리 말고 수많은 술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다. 부산에 오면 생탁만 찾지 말라며, 산성마을에서 500년 이어져 내려온 금정산성막걸리를 권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전통주 1호 지정을 받은 술, 산성 누룩으로 빚어낸 새콤한 풍미는 단순한 술을 넘어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살아있는 유산이었다.
오래전 부산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동래파전에 금정산성막걸리를 곁들이는 것이었다. 2019년, 비슷한 시기에 술을 배우며 인연을 맺은 동료들과 함께 동래구의 <소문난 동래파전>에서 마침내 그 계획을 이루었다. 그리고 최근, 대학 친구와 다시 이 집을 찾았다. 문 앞에 겹겹이 놓인 젖은 우산과 등산 스틱, 그리고 실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로 이미 그 친구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우리는 주저할 것도 없이, 정석대로 산성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했다.
그 집의 파전은 예술로 해석해야 한다. 쪽파를 가지런히 눕히고, 오징어·새우·홍합·돼지고기를 얹은 뒤 계란으로 봉합해 노릇하게 구워냈다. 한입 베어 물면 파의 향이 입안에 퍼지고, 해물의 감칠맛이 스치는 바람처럼 스며든다. 부산답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기본이지만, 나는 서울 사람 고집을 부려 간장을 찾았다. 묵직한 기름의 무게가 새콤한 막걸리와 만나 비 오는 날 창틀에 맺힌 물방울 같은 뒷맛을 남겼다.
잠시 한가로운 틈을 타 주인장에게 물었다. 동래파전의 뿌리는 조선 말기 동래 장터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했다. 비 오는 날 장이 선 듯 몰려든 사람들, 그들을 붙잡던 음식이 파전이었다. 부산에서는 오래전부터 파전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습속이 자연스레 굳었고, <소문난 동래파전>은 그 전통을 오늘의 맛으로 되살려냈다고 하셨다.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미각의 기억이었다.
내가 또다시 이 가게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건강 문제로, 2025년 2월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했다. 그래서 2024년 가을, 억지로라도 부산 동래구 일정을 끼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그 맛과 풍경을 마음에 새기고 싶어서였다.
가게 하나의 폐업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문화재 하나가 소실된 충격처럼 다가왔다. 이름 그대로 ‘소문난’ 집은 장터에서 시작된 음식을 도시인의 입맛으로 이어오며 한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부산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함께한 날들은 내게 술과 음식이 곧 문화이고 역사임을 일깨워 주었다. 진하고 새콤한 산성막걸리처럼, 그 집에서 흘러나오던 향취와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내 안에서 여전히 발효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영업을 재개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또다시 그 자리에서 파전 한 판과 막걸리 한 사발로 세월을 씻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