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강원 영월 | 한반도를 닮은 뗏목 여행

영월 한반도 뗏목마을









우리나라에는 한반도의 모양이나 중심을 닮았다고 전해지는 지형과 마을이 여럿 있다. 경북 봉화 청량산 자락과 충북 단양 도담삼봉, 괴산 청천면, 전북 임실 청웅면은 산줄기와 물길이 어우러져 작은 한반도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충북 괴산과 충주 일대는 국토의 중심점으로 지정되어 ‘한반도의 배꼽’이라 불리고, 강원도 철원의 한탄강은 한반도의 허리를 닮아 중심축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강원도 영월군 선암마을의 평창강이 빚어낸 굽이진 풍경은 국토 전체를 닮았다 하여 ‘한반도 지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전에는 높은 언덕 위에서 그 지형을 내려다보며 감탄만 했지만, 이번에는 뗏목에 올라 그 풍경 속을 직접 떠다녀 보기로 했다.


뗏목은 크루즈도, 유람선도 아니다. 바다낚시 배처럼 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평평한 나무판에 몸을 의지해야 한다. 출발지에 다다르자, 사공이 손짓을 하며 우리 일행을 재촉했다. 우리는 황급히 입장료를 내고 구명조끼를 걸친 뒤 뗏목에 올랐다. 예전에는 매표소 옆에 주막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갓 구운 빵 냄새가 흘러나왔다.


우리 일행이 왁자지껄 탑승하자, 사공이자 해설사인 분들의 목소리에도 흥이 더해졌다. 그들은 단순히 노를 젓는 이가 아니었다. 강 위에서 이야기를 짓고, 웃음을 건네는 배우이자 안내자였다.


“지금은 부산을 지나 남해에 온 셈입니다.”

“이 너머는 북한이니 돌아가야지요.”


그들의 비유와 농담은 풍경을 지도로 바꾸고, 강을 국토로 확장시켰다. 때로는 돌멩이를 건네주며 물수제비를 뜨게 하거나, 절벽의 형상을 짚어내며 닮은꼴을 찾아내는 장난스러운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돋웠다. 사공의 이야기와 우리들의 리액션이 어우러져, 뗏목은 어느새 작은 무대가 되었다. 일명 ‘참여형 연극’이랄까. 나중에는 노를 강 밑에 던져 떠오르게 하는데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배는 원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도구다. 엔진의 힘으로, 혹은 노의 리듬으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위에 앉으면 바람은 뺨을 스치고, 파도는 귀를 두드린다. 그 속에서 사람은 ‘이동’과 ‘여정’을 떠올린다. 강과 바다는 단지 지나가는 길이 된다.


그러나 뗏목은 다르다. 물길 위에 가만히 누운 나무의 집 같다.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물결의 어깨에 기대어 흘러간다. 소란스러운 엔진음 대신, 들리는 것은 강물의 숨소리와 물새의 울음이다. 발밑에서 삐걱대는 나무판의 작은 울림은, 강의 맥박이 곧 내 몸에 전해지는 듯하다.


그 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머묾’과 ‘쉼’이다. 뗏목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어딘가로 향하는 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머무르게 하는 방이다. 강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는 일 자체가 여행이 된다. 물론, 이 뗏목에는 모터가 달려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영월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을 따라 흘러간 그 날의 뗏목 체험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었다. 사공의 입담과 풍경의 은유가 어우러져, 강은 하나의 거대한 지도이자 무대가 되었고, 뗏목은 머무름을 가르쳐주는 작은 방이 되었다. 여행이란 어쩌면 도착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시간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형상을 품은 강 위에서 나는, 이동보다 머묾의 가치를 더 오래 마음에 남겼다.




20250704_140840.jpg
20250704_140849.jpg
20250704_140920.jpg
20250704_141144.jpg
20250704_141221.jpg
20250704_141253.jpg
20250704_141446.jpg
20250704_141614.jpg
20250704_141641.jpg
20250704_141800.jpg
20250704_142520.jpg
20250704_142657.jpg
20250704_142744.jpg
20250704_143019.jpg
20250704_143529.jpg
20250704_143542.jpg
20250704_143823.jpg
20250704_144225.jpg
20250704_144400.jpg
20250704_14475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산 동래 | 막걸리와 파전, 사라져간 한 집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