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주 서구 | 끝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여자배구

광주 페퍼스타디움 배구장









내가 여자배구를 처음 내 취향으로 삼은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현대, 미도파, 한일합섬 등 실업 배구 시절부터 TV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여자배구만이 아니었다. 프로야구, 실업농구, 프로축구, 심지어 씨름까지도 챙겨봤다. 다만 응원팀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프로야구에서는 OB를 응원했지만, 나머지 종목은 전부 ‘현대’였다. 현대,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전자, 울산 현대, 그리고 현대코끼리 씨름단까지. 왜 그렇게 ‘현대’라는 이름에 매혹됐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끌림은 결국 지금까지도 내 스포츠 관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자배구에 마음을 붙잡힌 결정적 이유는 지경희 선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현대 여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녀는, 묵직한 파워와 침대보다 안정된 수비로 코트를 지배했다. 신인 시절부터 ‘베스트 6’에 이름을 올리며, 화려함보다 강인한 에너지로 내 눈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국가대표 무대에서도 미도파의 박미희, 호남정유의 장윤희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대 배구를 이끌던 주역으로 활약했었다. 나에겐 그 모든 순간이 빛나는 기억이었다. 한 선수를 향한 애정이 결국 팀 전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지인들은 가끔 묻는다. 왜 여전히 여자배구를 보냐고. 나의 대답은 단순하다. 여자배구의 묘미는 ‘랠리’에 있다고.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수비가 이어내는 오랜 랠리 속에서 긴장감은 서서히 고조된다. 공이 바닥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건져 올려지고, 다시 네트를 넘어가는 순간 관중의 호흡마저 멈춘다. 그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마치 인생의 한 장면 같다.


삶이란 종종 당장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국면의 연속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헌신적인 수비와 이어지는 협력처럼, 뜻밖의 돌파구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시간 끝에 찾아온다. 그래서 내가 현재 좋아하는 선수도 리베로 김연견 선수다. 화려한 공격이 아니라, 묵묵히 지켜낸 작은 순간들의 누적이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다. 여자배구의 긴 랠리 속에서 나는 우리가 인생을 견디는 방식의 은유를 본다.


광주로 향한 발걸음에도 배구가 있었다. 광주 비엔날레 관람과 더불어 페퍼저축은행와의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찾은 페퍼 스타디움, 염주종합체육관은 1987년 완공 이후 시민 스포츠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변에는 수영장, 빙상장, 양궁장, 승마장, 월드컵경기장까지 온갖 체육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도시의 풍경은, 배구 경기를 찾아온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안도감을 주었다.


프로야구 직관은 대개 지인들과 함께하지만, V리그 경기는 여전히 혼자 본다. 여자배구 팬은 많지 않고, 인프라도 아직은 부족하다. 그래도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특별하다. 브라운관으로는 보이지 않던 ‘작전 배구’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선수들이 로테이션을 돌며 전술이 바꾸고, 순간순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는 복잡한 그림은 배구를 단순한 ‘공놀이’가 아닌 전략의 예술로 바꿔놓는다.


특히 여자배구는 남자배구보다 랠리가 길다. 한 점을 따내는 과정이 길고도 치열하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인생을 닮은 또 다른 이야기를 본다. 끝까지 버티고,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믿으며 이어가는 이야기. 여자배구는 단순한 승부를 넘어, 삶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20241113_180134.jpg
20241113_180509.jpg
20241113_180751.jpg
20241113_180911.jpg
20241113_181217.jpg
20241113_181220.jpg
20241113_181338.jpg
20241113_182520.jpg
20241113_182807.jpg
20241113_185323.jpg
20241113_185330.jpg
20241113_192622.jpg
20241113_195922.jpg
20241113_200351.jpg
20241113_2006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원 영월 | 한반도를 닮은 뗏목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