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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 근대의 시간이 머무는 작은 미로

강경근대문화거리










강경 시내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높은 아파트 너머, 작은 시간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거리가 있다. 군산이나 포항 구룡포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강경에도 근대문화거리가 있다. 서울에서 단숨에 달려와 이 거리 하나만 보기엔 다소 망설여지지만, 근처를 여행하다 잠시 발길을 들이밀면, 오래된 건축물과 골목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의외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마천루가 아니라 작은 건물의 자취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들에게 이곳은 더없이 소중한 풍경이다.


강경근대문화거리는 금강이 휘돌아 흐르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강경은 서해와 내륙을 잇는 수운의 거점으로 번성했고, 그 흔적은 여전히 건물과 길의 결 속에 살아 숨 쉰다. 국가등록문화유산만 아홉 곳, 근대 건축물은 수백 채. 그러나 숫자보다 더 선명한 기록은, 담벼락의 높낮이와 낡은 창살이 드리우는 그림자다. 햇살이 기울 때마다 벽돌과 창살은 또 다른 세기의 증언처럼 빛난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는 안내판과 정비된 보행로가 발걸음을 부드럽게 이끌고, 간간이 자리한 편의시설은 여행자의 걸음을 붙든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 붉은 벽돌 위에 내려앉은 햇살은 ‘다른 시대로 들어온 듯하다’는 탄성을 저절로 이끌어낸다. 파스텔 톤 건물과 빛의 조화는 작은 엽서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가장 먼저 마주치는 곳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유숙했던 사목성지다. 옛 성당 터는 소박하지만,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를 돌보던 신앙의 숨결을 품고 있다. 그 옆에는 1923년 지어진 연수당건재약방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목재와 적벽돌이 어우러진 전통 한옥식 상가 건물, 그러나 일본식 장식재가 덧입혀져 묘한 이질감을 자아낸다. 이 건물은 강경 포구가 번성하던 시절의 생활사와 도시의 맥박을 오늘에 전한다.

강부자 배우의 이름을 딴 길을 따라가면,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강경성지성당이 눈길을 압도한다. 붉은 벽돌의 고딕 양식 성당은 순례자의 마음을 기도 속으로 끌어당기며, 주변으로는 금강의 물길과 낮은 언덕이 한 폭의 신앙화처럼 펼쳐진다.


관광버스가 멈추고 젓갈 상가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간다. 그 맞은편에 자리한 근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 한일은행 건물은 현재 역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옆의 강경구락부는 근대 강경의 상징이었다. 사교와 문화가 오가던 공간은 오늘날 숙박과 카페로 다시 살아났다. 붉은 벽돌 외벽은 그대로, 내부는 아늑한 객실과 원목 가구로 꾸며져 머무는 이들을 근대 도시의 손님으로 만든다. 창가에 앉아 커피 향에 젖어 들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일상이 겹겹이 포개져 특별한 체류의 순간이 된다.


강경근대문화거리는 규모로는 크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든 시간과 결은 어떤 화려한 도시 풍경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경이란 도시를 몰랐다면, 그 감흥은 배가 될 것이다. 골목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벽돌과 작은 건축물의 그림자를 마주할 때, 여행자는 문득 깨닫는다. 이 거리는 아직 관광지로서 때가 묻어 있지 않아 감성 가득한 여행자에게 무조건 소개해 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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