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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 오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강경산

강경 옥녀봉








여름의 열기가 온몸을 짓누르던 오후, 나는 강경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뗄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길 앞에서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나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옥녀봉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국 나를 벤치에서 일으켜 세웠다.


강경 옥녀봉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가 이 봉우리에서 강물에 몸을 씻고 놀았는데, 그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하자 옥녀는 하늘로 돌아갔지만, 봉우리는 그녀의 자취를 머금은 채 신령스러운 산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옥녀봉은 마을을 지키는 영산으로, 사람들의 제의와 기도가 이어지던 곳이 되었다. 전설은 풍광을 은유한다. 선녀마저 머물다 간 봉우리라면, 그곳에서 바라볼 세상은 분명 특별할 터였다.


오르는 길목, 소박하게 보존된 초가집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었다. 이곳은 한국 침례교의 시작을 증언하는 강경침례교회가 자리했던 곳과 맞닿아 있었다. 1896년 미국 선교사 말콤 펜윅의 영향으로 세워진 이 교회는 한국 침례회 최초의 공동체였다. 금강을 따라 들어온 복음은 이곳에서 뿌리내렸고, 강경은 침례교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기점이 되었다. 강경의 산길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근대 종교의 문턱이기도 했던 것이다. 초가집에서 예배를 들였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정상에 닿기 전, 작은 슈퍼가 길손을 반겼다. 이름도 정겨운 ‘옥녀봉 구멍가게’. 낡은 공중전화와 평상이 놓인 가게 앞 풍경은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었다. 마침 시원한 생수 한 병이 필요해 가게 문을 열었다. 주인장과 대면할 수 있었다. 스무 살에 시집와 가게를 지킨 주인 할머니는 지금 여든 다섯. 강경포구가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 젊은 어부들이 옥녀봉 널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 작고 소박한 공간은 도시의 기억을 품은 타임캡슐처럼, 강경의 향수와 정을 전했다.


드디어 정상. 봉수대 아래 자리한 곰바위는 옥녀봉 최고의 전망 포인트였다. 시내와 금강, 멀리 익산과 부여까지 탁 트인 시야는 과거 번성했던 강경포구의 풍경을 불러온다. 바위 아래 새겨진 ‘해조문’은 1860년 조석의 원인과 시간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조석표였다.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을 새겨 넣은 역사적 비문이었다. 바람은 그 글자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넘어 오늘에도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옥녀봉 자락에는 뜻밖의 문화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2021년 문을 연 강경산 소금문학관. 지하 전시실에는 강경의 역사가, 1층에는 누구나 책을 펼칠 수 있는 열람실이, 2층에는 지역 작가들의 공방이 자리했다. ‘소금’은 박범신의 장편 『소금』에서 따왔다. 소금은 도시의 기억이며, 작가의 언어였고, 문학관은 그 기억을 지켜내는 또 다른 항아리였다. 테라스에 서자 금강 물결과 윤슬이 겹쳐지며, 문학이 도시를 품고 도시가 문학을 길러낸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한여름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논산 8경 중 하나답게 옥녀봉은 낮지만 시야가 탁 트여 강경 시내와 갈대숲, 멀리 익산과 부여까지 굽어보는 전망이 압권이었다. ‘안 올라왔으면 크게 아쉬웠겠다’는 깨달음이 들자, 땀방울은 순식간에 보상으로 바뀌었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종교, 상업, 문학의 흔적들은 강경이라는 도시가 단순히 땅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에 의해 살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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