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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 11년만에 다시 찾아 온 양조장

제주 서귀포 고소리술 양조장









2014년, 한국가양주연구소 지도자반 3기 졸업여행으로 처음 성읍마을의 고소리술 명인을 찾아갔다. 당시 명인께서는 제주식 초가집에서 좁쌀로 누룩을 빚는 시연을 보여주셨는데,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그 작업은 꽤 고되어 보였다. 많은 장면이 선명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술 문화의 맥을 지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시던 모습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곧 양조장을 보수하고, 관광객도 편히 맞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곳을 찾게 되었다.


양조장은 성읍민속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양조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 대신, 세련되고 깔끔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이제는 제주의 전통주 문화를 알리는 하나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듯했다.


혹시 ‘고소리술’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고소리술은 제주도 고유의 증류식 소주로, ‘고소리’라 불리는 뚜껑 모양의 증류기를 사용해 만들어진다. ‘고소리’는 ‘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으로, 주로 보리나 고구마를 발효시킨 뒤 전통 솥과 증류 장치를 이용해 고도수의 투명한 술을 얻는다. 흙이 척박하고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 이러한 술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생존의 지혜 속에서 탄생했다. 증류기 상단에 올리는 뚜껑의 모양이 소 머리를 닮아 ‘고소리’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술은 오랜 세월 제주 여성들의 손에서 빚어지며, 가정과 마을의 잔치, 제례에서 함께했던 삶의 일부였다. 고소리술은 제주인의 지혜와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는 귀중한 전통주다.


이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제주 동부에 위치한 성읍민속마을이다. 조선 시대 정의현의 읍성이 있었던 이 마을은, 지금도 전통 가옥과 민속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고소리술 복원과 전승에 평생을 바쳐온 인물이 있다. 바로 김희숙 명인이다.


김 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술 빚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고소리술을 몸으로 익혔다. 시대의 변화 속에 전통이 잊힐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는 이 술이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제주 여성의 삶이며 마을 공동체의 기억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소리술을 복원하고 다음 세대로 전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처럼 여겼다.


그가 빚는 고소리술은 단순히 옛 맛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순수 제주산 보리와 누룩, 그리고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오랜 시간 연구하고 실험한 끝에, 제주 고유의 향과 깊이를 품은 술을 완성해냈다. 설명하는 내내 그는 ‘허투루 만든 술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투명하지만 깊고, 강하면서도 여운이 긴 그의 술은 단지 음료가 아닌 하나의 문화유산이었다.


11년 전, 그의 진정성 어린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의 양조장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진심이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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