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대한목장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의 중산간 깊숙한 곳, 바람결에 나무 향이 실려 오는 조용한 풍경 속에 <대한목장>이 있다. 이곳은 약 70년 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경주마 전용 목장으로, 2025년 4월부터 일부 구역이 일반에 개방되면서 이슈가 되었다. 총 30만 평에 달하는 목장 중 약 2만 평이 공개되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창고와 구조물들은 고유의 매력을 지닌 채 카페와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방문객들은 말과 함께 산책하고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카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편백나무와 대나무의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사실상 이 카페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 끝났었다. 울창한 대나무 숲은 자연 속 존재로 돌아가는 듯한 테라피의 경험을 안겨주었고, 그 안을 거닐며 만난 말들은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반짝이는 털과 당당한 자세의 말들이 아니라, 어딘가 결핍되고 상처 입은 눈빛을 지닌 말들이었다.
알고 보니 이곳의 말들은 부상당했거나 경주에서 도태되어 버려졌던 폐마들이었다. 안락사의 위기에 놓였던 말들을 입양해 보호하고 있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직접 다녀온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울타리 안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던 백마 한 마리는, 당근을 건네도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 나중에 주차장에서 만난 관리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해당 말은 최근 들여온 말이며 발정기와 무리 내 세력 다툼으로 인한 불안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카페 리뷰를 살펴보면, 몇몇 방문객들이 이 같은 모습만 보고 말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은 평가를 남겼다. 그들은 이 공간을 동물학대의 장소로 오해한 듯하다. 하지만 말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이들이 어떤 사연을 안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감이 필요했다. 이곳은 치유의 공간이며,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장소였다.
대한목장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불완전한 생명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며, 자연과 인간이 조용히 공존하는 쉼의 장소다. 편안한 풍경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하나씩 들춰보는 그 과정 자체가 이 목장이 선사하는 가장 깊은 감동일지 모른다. 자연을 닮은 속도로 걷고, 비워두었던 감정의 여백을 채워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은 '섬 속의 섬'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대한목장은, 사라져야 했던 생명들에게 또 다른 시작을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