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다농바이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양조 현장에서 반짝이는 구리빛 동증류기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산업용 설비조차 귀했고, 교육용으로 제작된 소형 동증류기를 개인이 구입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했다. 당시 나는 수업 중 호기심 가득한 수강생들과 함께 20리터짜리 포르투갈산 알람빅을 공동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가격은 60만 원, 그마저도 신기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2018년 포르투갈 여행길, 식기 상점 쇼윈도 안에 줄지어 놓인 동증류기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대가 변했다. 전통주 교육과 양조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동증류기의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다. 이제는 온라인만 열면 다양한 크기와 기능을 갖춘 장비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전통 증류기인 소줏고리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화려한 존재감과 효율성 면에서는 대형 동증류기의 위세를 따라가기 어렵다. 다만 소줏고리 술의 순박한 맛은 여전히 귀하다. 문제는 전통적 형태의 현대화가 아직 더디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소줏고리형 스테인리스 증류기를 보며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한다.
증류소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증류기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불꽃을 삼킨 구리의 숨결이 술로 피어오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국가양주연구소 증류주반이 주최하는 양조장 투어에 합류했다. 늘 공지에 올라오는 프로그램을 보며 끌리는 곳이 있으면 바로 신청하곤 했는데, 이번엔 충주에 있는 <다농바이오> 증류소가 목적지였다.
다농바이오는 대대손손 내려온 가문 양조장이 아니다. 2020년에 설립된 이곳은 오히려 새로운 도전의 상징이다. 이름처럼 ‘많을 다(多)’, ‘농(農)’을 품어 지역 농산물과 미생물로 술을 빚고, ‘바이오’의 감각을 통해 과학적 정밀함을 더한다. 경영 철학은 명확하다. “가치 있는 술로 세대와 시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대표의 소개로 시작된 투어는 술이 아닌 이야기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2023년에 출시된 ‘가무치 25’가 첫 성과였다. 이름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인 민물고기 가물치에서 따왔다. 빠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의 의미를 담아낸 술이었다. 이어 등장한 ‘가무치 43’은 시장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은 항아리 숙성 ‘가무치’, 오크 숙성 라인 ‘수록’, 협업 한정판과 하이볼 캔까지 품을 넓히고 있다.
특히 ‘수록’은 “물사슴”을 뜻하는 이름처럼 한국적 정서와 서양식 캐스크 숙성이 교차하는 술이다. 포트, 마데이라, 토카이, 셰리 등 다양한 오크통의 숨결이 켜켜이 쌓여 독특한 풍미를 완성한다.
이 모든 중심에는 독일 코테(Kothe)사의 구리 증류기가 있다. 두 개의 9단 칼럼이 결합된, 사실상 18단 정밀 구조의 설비. 가격은 3억 원을 훌쩍 넘어 현재는 1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거친 향을 거르고 섬세한 향을 남기는 이 장치는 바닐라와 배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술 속에 입혀 넣는다. 불을 다루는 장인의 손끝에서 향은 하나의 조각보처럼 엮여 갔다.
숙성 방식 또한 남다르다. 다농바이오는 매년 포르투갈 쿠퍼리지와 직접 계약을 맺고 100~150개의 오크통을 들여온다. 이미 400여 개의 배럴이 증류소에 쌓였고, 최근에는 국산 참나무 오크통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형 캐스크 숙성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직접 포르투갈에 건너가 캐스크를 고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 장면에서 나는 양조인으로서 묻혀 있던 열정이 다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대표는 자식들을 현장에 세우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자본잠식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더 넓은 공간 확보와 새로운 배럴 포트폴리오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충주산 쌀과 물, 그리고 지역 농산물을 술에 깊이 담아내는 것.
다농바이오의 한 잔은 충주의 흙에서 시작해 독일 코테 증류기의 불로 다져지고, 포르투갈 참나무의 나이테로 시간을 입는다. 그 안에서 지역·기술·시간이 어우러지며, 마침내 ‘연결’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그날 양조장을 떠나오며, 나는 술잔 속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간의 결을 느꼈다. 다농바이오에서의 시간은 그래서 더없이 눈부셨고, 동경과 부러움으로 오래도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