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림동 제육원소
올해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28번 트램을 타고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여행의 리듬에 취해 있던 순간, 인도네시아에 사는 친구 승명이의 이름이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외국에 있으면 이상하게도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목적지까지 더 가야 했지만, 차분히 통화를 하고 싶어 몇 정거장 전에 내렸다. 마땅히 앉을 벤치가 없어,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골자는 곧 인도네시아에서 베트남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주재원 생활 덕분에, 아니 덕분이라 하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그녀와 딸 선율의 삶은 몇 년마다 새로운 나라로 옮겨갔다. 그 시점마다 그녀를 만났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승명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옮길 때에는 약수동 춘풍양조장에서 만나 같이 견학 투어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복귀를 염원했으나, 인도네시아에서 베트남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나머지 이야기는 한국에서 만나는 날 풀기로 했다.
리스본에서의 통화에서도 그렇고, 막상 만나서도 그녀의 하소연은 빠지지 않았다. 떠도는 나그네처럼 매번 뿌리를 잘라내는 기분일 것 같았다. 남편의 직책은 푸른 바다처럼 반짝이지만, 그 그림자 아래에서 그녀는 매번 새로운 언어와 시장의 냄새 속에 길을 찾아야 했다. 아이는 친구를 사귀자마자 이별을 배우고, 그녀는 다시금 가방의 지퍼를 닫으며 또 다른 시작을 받아들여야 했다. 햇살 가득한 동남아의 하늘 아래에서도, 때때로 텅 빈 바람이 가슴을 스치듯 안정과 익숙함을 잃은 허전함이 찾아온다.
술자리는 다시 일상 이야기와 과거의 기억으로 채워졌다. 어른들의 술잔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작은 별빛들이 탁자 위를 스쳐갔고, 이야기의 물결은 끝없이 번져갔다. 그러다 선율이의 목소리가 파문처럼 번지면, 모두의 시선이 아이에게 쏟아졌다. 잠시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 웃음과 환호 속에 서 있다가, 곧 다시 어른들의 세계가 잔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이는 작은 섬처럼 홀로 앉아 자신의 우주를 만들다 허물며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그 곁에 다가가 같이 카드놀이를 하거나 머리를 묶어주며 놀이를 이어주는 어른은 마치 별이 바다를 건너 작은 섬을 찾아낸 듯 따스했다.
나는 종종 외국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반면 승명이는 자의가 아니었음에도 이미 그 낯선 땅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마치 유리창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도 너머에는 내가 그리는 이상향이 출렁이지만, 동시에 짠 내음 속 현실의 무게도 함께 밀려온다. 나는 그 모순을 알면서도, 결국 그녀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내 안의 부러움을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속삭인다. 언젠가 나도 그 바다를 건널 수 있기를, 그러니 당신의 길 위에 나의 존재도 얹어달라고 떼를 쓴다. 결국 한시적 여행을 위해 내년 1월 호찌민 행 티켓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