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사랑방식당>
새벽까지 노래방의 마이크에 남은 기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대열에 들지 않았다. 이른 잠에 기대어 눈을 붙였고, 동이 트자 숙소 주변을 산책하듯 뛰었다. 약 4km, 땀은 셔츠를 다 적셨고 심장은 오래된 시계를 다시 감듯 규칙을 되찾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이미 외출 채비를 마친 이들은 모닝커피 잔을 앞에 둔 채 여유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도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한 한 사람에게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밥은 기다려서 먹어야 한다”는 낮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오픈에 맞춰 숙소를 나섰다. 새로운 여행의 리듬을 맞추는 첫 박자였다.
영월 읍내에 닿아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서자, ‘사랑방’이라는 이름 옆에 오징어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오픈 시간보다 조금 일렀다. 덕분에 우리의 말소리만 식당 앞 공기를 채웠다. 혹여 다른 손님이 먼저 올까, 몇몇은 의자를 끌어 문턱을 점거했고 나머지는 동네를 한 바퀴 훑었다. 선우 형은 모자가 필요하다며 노점 앞에 멈췄다. 우리가 카우보이 모자를 권하자 거울 앞에서 한 번 웃고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섰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니 우리 뒤로 사람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그때 밀려온 감정은 큰 환희라기보다 줄의 맨 앞에 작은 깃발 하나 꽂아 둔 듯한, 은근하고도 또렷한 쾌감이었다.
<사랑방식당>은 영월에서 이름난 집이다. 메뉴는 오징어불백과 돼지불백, 오직 둘뿐. 이 집의 시작은 1982년, 강순옥 할머니가 문을 연 뒤 어느 날 군청 공무원의 “오징어 좀 구워 달라”는 부탁에서 비롯됐다. 그 청이 계기가 되어 오징어두루치기가 태어났고, 지금은 식당의 얼굴이 되었다.
난 두 번째 방문이다. 이 식당의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다. 이 집은 배에서 바로 얼려 올린 선동 오징어를 고집한다. 약한 불로 달여 채소의 단맛을 스며들게 하고, 고춧가루와 들기름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식탁 위에서 손님이 스스로 익혀 먹는 ‘식탁 앞 조리’가 이 집의 리듬을 만든다. 메뉴를 엄격히 제한해 회전과 집중을 높였고, 비조리 포장과 택배로 불맛의 문장을 타지로도 보낸다. 심지어 광화문에 직영점을 열어, 영월의 불씨를 도심의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게 했다. 광화문점은 오징어초무침과 오징어튀김을 먹을 수 있다.
먹는 법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불맛이 살짝 올라온 고기와 오징어를 반찬과 함께 밥도둑처럼 비벼 먹다가, 마지막엔 김가루와 밥을 턱 얹어 볶음밥으로 장면을 닫는다. 양이 과하진 않지만 마감의 볶음밥이 백미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속은 가뿐하고 마음은 반쯤 채워진 듯, 나머지 반은 다음 방문을 위해 남겨 둔 약속처럼 남는다. 나는 또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한다.
메뉴판을 보는 순간, 글자들이 잔을 부딪치며 속삭이듯 술을 청했다. 나는 손가락을 작게 접어, 숨 쉬듯 키오스크로 소주 한 병을 몰래 담았다. 곧 운전대를 잡을 동행들을 떠올리자 잔 하나에도 미안함이 얹혔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선 딱 한 병만, 입가심처럼 가볍게 끝내자고 마음을 묶어두었다. 추가 주문 버튼 앞에서 도발하려 했지만, 주변의 만류가 부드럽게 욕망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침 해가 막 기지개를 켠 시간이라는 사실이 내 안의 불씨를 가만히 눕혔다. 역지사지는 때때로 좋은 코르크 마개다. 욕심은 목넘김에서 멈춰 섰고, 웃음만 잔의 짧은 그림자처럼 테이블에 비스듬히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