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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 | 계곡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

영월 <연하계곡>








전날 래프팅 중, 동강 물살의 막바지를 돌던 때 주연의 전화가 걸려왔다. 젖은 몸은 이미 강물에 여러 번 헹궈져 텅 비었고, 통화 품질은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처럼 자꾸 끊겼다. 그녀가 연하계곡 초입 카페에서 찰옥수수와 통닭을 판다며 먹을 거냐 묻는 듯했지만, 목소리는 잡히지 않는 물결처럼 흘러나갔다. 지친 우리의 숨은 말끝을 제대로 묶지 못했고, 결국 내 머릿속에는 두 개의 키워드만 남았다. ‘카페—통닭.’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연하계곡으로 향했다. 계곡 옆 주차 공간이 넉넉지 않아 일부는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워 걸어 올라오고, 일부는 좁은 오르막을 조심스레 몰았다. 카페 앞 바비큐 기기에서는 실제로 통닭과 찰옥수수가 구워지고 있었고, 기름 냄새와 옥수수의 단내가 대낮의 피곤을 순식간에 흔들어 깨웠다. 나는 차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쪽에 합류했는데, 유난히 덥고 습한 날이라 그 선택이 유난히 현명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의 호스트 영은이의 픽, 연하계곡은 이름처럼 작고 고운 여울이었다. 강원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 응봉산 북사면 골짜기에 붙어 있는 이곳은 그늘이 넓고 물길이 얕아 자리 두어 개만 펼치면 풍경이 꽉 찼다. 바위 틈새를 따라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 흐르고, 안쪽에는 약 6미터 높이의 용소폭포가 푸른 움푹함을 품고 있었다. 발목만 담갔는데도 금세 허벅지까지 서늘함이 차올라 심장을 두어 번 더 조여 왔다. 전날의 동강이 사람을 밀어내는 물이었다면, 오늘의 물은 품으로 불러들이는 물—물장구 소리가 여름의 초침처럼 또박또박 숲을 건넜다.


물놀이에 능숙한 이들도 차가움 앞에서는 잠시 말을 아꼈다. 나처럼 물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은 바위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먼저 들어간 이들이 ‘무사함’을 확인하자, 자연이 깎아 만든 작은 탕에 한 명씩 천천히 몸을 맡겼다. 렌즈 앞에서는 매 순간이 제목을 달고 등장했다. 튀는 물보라, 얕은 비명, 웃음이 번지며, 사진의 콘텐츠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그때, 아무도 발을 올리지 못했던 물의 계단을 향해 남자 주연이가 움직였다. 떨어지는 물기둥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어깨에 멘 사람처럼, 그는 발끝으로 미끄러운 문장들을 더듬어 읽듯 한 글자씩 올라섰다. 물은 정강이를 잡아당겼지만, 마침내 주연이는 폭포 위 바위 한 점에 몸을 붙였다. 그 순간 흰 물안개가 조용히 환호를 흩뿌렸고, 우리 눈앞에는 아직 펼치지 않은 다음 페이지가 빛처럼 떠올랐다.


주연이를 본 일행이 하나둘 폭포 앞으로 모여들었다. “조심해, 천천히.” 말들은 부표처럼 물 위에 떠서 흔들렸고, 지켜보는 손은 어느새 기도처럼 모였다. 도전하는 사람들은 물의 호흡에 박자를 맞추어 움직였다. 바위의 길쭉한 상처를 손잡이처럼 잡고, 미끄러짐과 균형 사이에 선을 그어 발을 디뎠다. ‘안전’이라는 두 음절이 가슴에서 낮게 울리고, 두려움과 설렘이 서로의 그림자에 기대어 섞였다. 나는 그들의 순간을 연신 프레임에 눌러 담았다. 폭포는 끝내 우리를 시험했지만, 우리는 그 의심 위에 ‘확신’이라는 도장을 또렷하게 눌렀다. 역시 ‘코둘’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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