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신리성지
철저한 여행 준비는 즉흥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도 깨지지 않는 액자의 단단한 테두리다. 나는 떠나기 전 가방보다 먼저 마음의 안쪽 주머니를 정리한다. 예상의 지도를 부지런히 그려 두고, 챙김의 바늘땀을 촘촘히 꿰맨다. 그 세공이 있어야 길 위의 우연이 제 빛을 다 낸다. 충전된 배터리와 여분의 계획은 자유를 위한 안전핀, 체크리스트는 두근거림의 체온을 지키는 얇은 담요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도 출발 전에 렌즈를 닦는다. 렌즈를 닦아야 풍경이 또렷해지듯, 준비를 닦아 두어야 길에서 만날 뜻밖의 환대가 정확한 초점을 얻는다.
태안여행이 확정되자마자 휴대폰 날짜 노트에 표시했고, ‘여행 일로부터 1주 전부터’ 이미 길 위에 올라 있었다. 호스트에게 초반 일정을 대강 듣고 쉼표로 남은 칸에는 나만의 선율을 그었다. 나는 ‘여행 속 여행’인 액자식 구성을 좋아한다. 올해 초부터 마음에 붙여 둔 메모—신리성지—를 꺼내 본여행의 에피타이저로 올렸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 출발할 일행과 오전 일정이 맞춰졌고, 태안에 사는 호스트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원래는 순례길을 걸을 생각이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뤘다. 작은 개울로 시작한 여행 속 여행이 큰 강의 본류로 합쳐지듯, 결국 전체의 여행 속에 수렴되었다.
서울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렸지만, 당진에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맑게 개었다. 평야를 가르는 2차로를 따라가면 논 사이로 바람결이 헤집어 놓은 물빛이 반짝이고, 길은 낮은 지평선 속으로 풀리며 들판 한가운데 느닷없이 신리성지가 나타났다. 높은 산도 빌딩도 아파트도 없는, 시야가 통째로 열리는 풍경—소셜미디어에서 ‘풍경 맛집’이라는 표현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입구로 들어서자 초록의 뜰은 곧 묵상의 호흡으로 바뀌고, 잔디 구릉 위로 탑과 십자가가 떠올랐다. 순교미술관·야외성당·십자가의 길은 점과 선으로 이어져 공간 자체를 하나의 기도로 엮었다. 멀리 표지판은 버그내순례길의 다음 행선지를 가리키듯 솔뫼성지를 일러 주고, 표지판이 드문 구간조차 시야의 평온함이 길을 밝혀 주었다.
도착하고 잠시 뒤, 정각도 아닌 10시 47분에 종소리가 울렸다. 이유를 따지기보다 풍경과 어울린 소리의 청량함이 먼저 가슴에 닿았다. 소리는 빛과 함께 성지의 공기를 맑게 씻어 주었고, 우리는 가장 높은 전망대로 발을 옮겼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360도 파노라마는 들판의 결, 마을의 호흡, 하늘의 여백을 한 장의 프레임 안에 포개어 보여 주었다.
신리성지에 닿으면 먼저 ‘내포’라는 이름이 입안에서 한 번 더 굴러간다. 바다가 내륙으로 휘감겨 들어오던 지형에서 비롯된 내포는, 강과 습지, 논이 짜 놓은 그물 같은 땅이다. 그 중심의 신리는 19세기 최대 규모의 교우촌으로 자라,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병인박해로 순교하기 전까지 21년을 살며 교회의 숨을 고르던 자리였다. 다섯 성인의 이름—다블뤼 주교, 손자선 토마스, 오매트르 피에르, 위앵 루카, 황석두 루카—이 작은 마을의 흙길과 논두렁을 건너 오늘까지 전해 온다. 이곳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다. ‘조선의 카타콤바’라 불린 은닉과 보호의 세월, 숨죽여 이어진 기도와 가르침이 바람의 비늘처럼 반짝이며 되살아난다. 그 역사적 숨결은 풍경의 배경음이 아니라, 걸음을 조율하는 박자에 가깝다.
건축은 그 박자를 눈으로 듣게 한다. 순교 140주년이던 2006년 완공된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은 고딕의 수직을 좇지 않고, 낮고 단정한 선으로 땅의 호흡을 닮았다. 2014년 문을 연 다블뤼 기념관은 외부 경사로가 옥상 전망대로 이어져 시선을 위로만이 아니라 ‘사이’로 흐르게 한다. 2017년 지하에 들인 순교미술관은 어둠과 빛의 대비 속에 이종상 화백의 기록화와 다섯 성인의 영정을 품었고, 작품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느려진다. 잔디 구릉 사이사이에 박힌 작은 경당들은 성인에게 바쳐진 ‘기도의 방’이고, 승리의 성모상·야외성당·십자가의 길은 점·선·면을 이루어 ‘걷는 기도’의 도형을 완성한다. 그렇게 공간은 액자의 틀과 여백을 함께 갖춘다—틀이 형식을 주고, 여백이 숨을 준다.
한여름의 신리성지는 윈도우 배경화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조경이 곧고 반듯했다. 잔디선은 일정했고, 어디 하나 흐트러진 곳이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를 왜 이제야 찾아왔을까.” 같은 감탄이 일행 사이를 오갔다. 나는 곧 약속을 하나 더했다. 가을에 다시 오자고—버그내순례길을 따라 솔뫼성지까지 천천히 걸어가 보자고. 준비의 액자 속으로 계절의 다른 빛을 끼워 넣으면, 풍경은 또 한 장의 기도로 현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