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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망원 | 서로 닮은 점이 많아 연결된 삼인방

망원동 <빙하>









세계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유는 종종 추상으로 그치지만, 우리 셋이 마주 앉는 순간 그것은 손끝의 감각으로 바뀐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 탁자 위에 늘어놓으면 다른 각도에서 찍힌 장면들이 음각을 공유하듯 포개지고, 말끝마다 닮은 무늬가 번진다. 우연은 세 가닥 줄에 잠시 생긴 매듭일 뿐, 매듭은 오히려 선을 단단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대화로 증명한다.


처음의 접점은 ‘청년 섬투어’였다. 나는 소담이와 함께 참가자로, 보영이는 촬영 스태프로 다른 일정에 서 있었다. 소담이와 나는 보영이를 서로 알고 있었지만, 소담이와 나는 서로의 존재감을 모른 채 지나쳤다. 이후 안도북스 서점 대표가 우리를 한 선으로 묶었다. 마포에 살고, 여행을 사랑하고, 자기 이야기로 책을 냈고, 무엇보다 가치관이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만나서 알았다. 공통분모는 겉면이 아니라 심지에 박혀 있었다는 것을. 강원도 홍천의 경험이 불쑥 겹쳤고, 그 한가운데에는 한때 우체국 국장이었던 보영이의 아버지가 또 하나의 연결고리로 서 있었다.


우리는 자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의 가느다란 선이 거리의 두께를 얇게 만들고, 어느 날 누구의 제안이 물줄기를 틀면 약속은 급류를 탔다. 약속 장소가 공백으로 남았을 때, 나는 내가 아끼는 망원동의 요리주점 <빙하>를 꺼냈다. 소담이의 집에서도 가깝고, 마포에서 보면 좋아하는 보영한테도 딱이어다. 이들은 주저함 없이 동의했다.


초여름의 저녁, 이름부터 서늘한 <빙하>에 들어섰다. ‘빙하’라는 이름은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라, 더워진 세계에서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숨쉴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품은 표정처럼 보였다. 지속 가능성, 환경 보호, 작은 실천—이곳은 그것들을 간판 뒤에 숨기지 않고 공간의 결로 드러냈다. 그리고 벽면의 장식과 소품 곳곳에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은근하게 박혀 있어, 차가운 얼음덩이의 이름 아래 포근한 체온을 더했다.


<빙하>를 운영하는 부부 중 임진아 사장과는 독립출판을 하던 시절부터 인연이 이어졌다. 그녀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손님들의 지도를 빠르게 읽어내고, 우리의 세계관과 닿은 색을 발견하자 울타리는 금세 사라졌다. 보영이는 여전히 트레일 러너로 산을 달린다. 평지가 아닌 산길을 백 킬로미터 넘게 끌고 가는 몸—나는 공군 출신이라 행군 훈련조차 해보지 않아 그 스케일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녀의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펼쳐질 때, 우리의 감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등고선이 되었다.


이곳의 밤은 미지근한 불빛과 뜨거운 팬 소리로 천천히 녹아내렸다. 메뉴는 국적의 경계를 가볍게 넘는다. 남자 사장님이 다양한 장르의 요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메뉴판에서 비스크 파스타, 비프 타르타르, 뚝배기 마라 감바스, 바깔라우 아 브라스 같은 글자들이 얼음 속 공기방울처럼 하나씩 올라왔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본능적으로 먹고 싶다고 느껴지는 메뉴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요리를 기다리면서 먼저 나온 각자의 주류를 음미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빈티지한 감성으로 꾸려진 술상 앞에서 각자의 하루를 천천히 해빙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우리는 한 권의 지도를 접어 한 줄기의 경로로 만든 사람들 같았다. 섬에서 시작된 선이 마포의 책방을 거쳐 망원동의 주점으로 이어지고, 빙하의 테이블 위에서 더 단단해졌다. 기후를 생각하는 이름의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절약하지 않고 오래 데우는 방식으로. 세 가닥의 줄은 그 밤 하나의 현이 되었고, 우리는 각기 다른 떨림으로 같은 음을 냈다. 그 음이 지나간 자리마다 다음 만남의 길이 열렸다. 세상은, 정말로, 우리가 모일 때 한 개의 선이 된다. 보영아, 소담아 또 언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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