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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망원 | 단맛의 빈자리, 두 개의 달

망원 <버터크림팩토리>









입맛도 조기교육이 성인까지 이어진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자극적인 맛에서 나를 조심스레 떼어 놓았다. 지금도 나의 맵기 내성은 신라면 언저리에서 멈춰 서고, 조미 김은 밥 없이 홀로 집어 먹지 않는다. 무엇보다 집에서는 단맛에 대한 통제가 분명했다. 군것질의 기억 대신, 혀에는 ‘금지’라는 문장이 먼저 배웠고, 그 문장 사이사이 공백이 오늘의 기호를 빚었다.


서른 중반, 한국 전통주 교육을 받으면서 술을 중심으로 한 취향의 서랍이 하나둘 열렸다. 잔에 담긴 풍미는 자연스레 안주와 페어링으로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디저트까지 발길이 닿았다. 카페에 가면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던 내가 어느 순간 쇼케이스 앞에 서서 작은 유리 진열장을 하나의 미각 지도처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저트는 기본 탑재된 단맛으로 나와 충돌했고, 도전의 기록은 자주 실패로 닫혔다. ‘달지 않음’이라는 좌표를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그때는 몰랐다.


전환점은 2018년, 유럽 배낭여행 중 만난 리스본의 아침이었다. 밤늦게 도착해 샤워만 하고 쓰러지듯 잠든 다음 날, 숙소 로비에서 에스프레소와 에그타르트가 나를 깨웠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결 사이로 버터의 고소함이 올라오고, 설탕의 주도권은 뒤로 물러난 채 커스터드는 잔잔하게 떨렸다. 얼얼한 단맛 대신 남은 것은 고소함과 은은한 그을음—그날 나는 비로소 ‘담백한 디저트’라는 문장을 받아 적었다.


얼마 전, 두 번째 포르투갈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한동안 포르투갈병에 시달리듯, ‘나따’의 성지를 찾아다니는 순례가 시작됐다. 마포에서 가까운 순으로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 첫머리에 망원동의 <버터크림팩토리>를 올렸다. 주말 이른 저녁, 설마 했던 마음은 문 앞에서 곧장 현실로 바뀌었다. 품절. 다음 방문은 전략을 세웠다. 주중 이른 점심, 시계가 아직 정오를 가리키기 전 문을 밀어 들어가기로.


파란 글씨 간판이 있는 매장 현관을 열면, 버터의 온기와 굽는 소리가 작은 공방을 하나의 오븐처럼 데웠다. 의자는 없다. 여기는 주로 포장을 해갔다. 벽을 따라 선 스탠딩 바에 몸을 기댄 채 서서 먹고 마시는 일의 리듬이, 도시의 속도를 컵 가장자리까지 밀어 넣었다. 타르트는 종종 이른 시간에 동난다 하여 예약을 권한다지만, 오늘의 나는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종이 상자에 타르트를 포장해올까 고민했었는데, 스탠딩 자리에서 바로 커피와 함께 먹기로 했다. 나는 서서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쉼표 하나를 혀끝에 찍었다.


이날 주문한 건 세 갈래의 달—포르투갈식, 마카오식, 홍콩식이었다. 포르투갈식은 겹겹의 페이스트리가 부서질 때마다 카라멜화된 표면이 별가루처럼 흩어지고, 속은 미세하게 떨리는 노란 호수같았다. 마카오식은 결이 더 또렷한 퍼프 위로 달걀 향이 풍성하게 맺혀, 한입마다 점성의 파도가 혀끝에 밀려왔다가 맥을 골랐다. 마지막 홍콩식은 버터 쿠키 같은 크러스트에 매끈하고 영롱한 커스터드가 단정히 앉아 마침표처럼 닫히지만, 내 미각의 문법에서는 그 쿠키 결이 에그타르트의 문장 밖에 있었다. 그래서 홍콩식 에그타르트는 탈락. 남은 두 개의 달은 막상막하였다. 커피 한 모금과 번갈아 오가며, 나는 달콤함이란 감정에도 문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탄닌의 여운, 카라멜의 그을림, 그리고 고요한 단맛의 숨.


돌아보면, 어릴 적 혀에 새겨진 절제가 결핍이 아니라 윤곽이었다. 단맛을 비워낸 자리에는 곡선이 살아났고, 그 곡선은 성인이 된 나를 더 느리게, 더 또렷히 걸어가게 했다. 망원동의 스탠딩 카페에서, 한 손엔 커피, 다른 손엔 타르트를 든 채 나는 두 개의 달을 번갈아 올려다봤다. 어느 하나로 쉽게 기울지 않되, 각자의 빛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태도로. 입맛의 조기교육은 이렇게 어른의 취향으로 완성된다. <버터크림팩토리>에서의 내 취향은 선언이 아니라 포르투갈식과 마카오식, 두 개의 달을 아직은 편애 없이 품어 두는, 열린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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