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리움미술관 <이불: 1998년 이후>
처음엔 그 이름을 비웃었다. 소리만으로도 세계를 여닫는 문이 있다는 걸 몰랐다. “이불”이라는 두 음절을 가볍게 밀쳐내던 내가, 어느 날부터 한 작품씩 스치며 그 문지방에 발을 걸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소장품전에서 마주한 그 작품—멀리서는 샹들리에의 화려한 금빛 비늘, 가까이선 낯선 세포와 금속의 부조화—는 눈부심이 아니라 눈부심의 상처를 보여줬다. 광휘가 사물의 경계를 문지르며 일으킨 섬뜩한 미세 진동. 그 진동을 해석하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작가가 세운 유토피아의 지도에서 길을 잃고 싶어졌다. 그녀의 세계는 완벽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치기보다, 결함과 욕망의 파편들을 매달아 하나의 별무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빛났다. 아름다움이 허공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이 빛을 숙성시킨다는 사실을, 그 샹들리에가 오래도록 내 눈에 박아두었다.
그래서 내가 오래 써 온 닉네임 ‘antipara’는 반항의 표어가 아니라 안쪽에 숨은 표식이 되었다. 파라다이스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의 제도(制度)가 항상 여백과 균열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불의 작업은 유토피아를 약속이 아니라 질문으로 데려오고, 그 질문의 가장자리—반짝임과 기괴함이 맞닿는 봉합선—에 우리를 세운다. 그곳에서 빛과 그늘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 증명이 된다. 나는 이제 완전한 낙원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실패로 지지된 발판 위에서 더 멀리 보게 만드는 발광을 믿는다. 그 모호한 상상에 이정표를 세워 준 사람—낙원의 이면을 밝혀 보이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문지방을 넘는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예약해 둔 개인전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답장이 온 듯 리움미술관 문턱을 넘었다. 성지 순례 앞의 예식처럼 작품 노트를 몇 번이고 훑고, 이미지와 문장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단련했다—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예의라 믿으면서. 이상하게도 ‘정말 좋아함’은 나를 크게 흔들기보다 작게 만든다. 소스라침이 아니라 잠깐의 숨멎음,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드는 부끄러움. 직접 작가와 대면하는 것도 아닌데, 눈앞의 작품 앞에서 나는 자꾸 몸을 접는다. 게다가 내겐 오래된 징크스가 있다. 가장 아끼는 이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 인터뷰는 활자로만 받아들인다. 음성은 상상 속에 남겨두어야 그 사람에게 둘러씌운 미세한 후광이 깨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기의 떨림 대신 문장의 결로 그들의 호흡을 짐작하고, 그 빈자리의 침묵으로 신비를 금박 입힌다. 이불 작가에게 그러했고, 김애란 작가에게도 그렇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나를 신격화의 함정으로 몰아갈 때, 나는 말을 아끼고 걸음을 늦춘다. 그렇게 단정과 주저의 사이에서, 기다림이 비로소 관람이 되는 순간을 천천히 맞이한다.
리움미술관의 전시는 제목부터 방향을 말해준다. <이불: 1998년 이후>. 말하자면 ‘이후’들의 지형도다. 입구에서 관객은 무한반사로 낯익은 몸을 작은 파편들로 해체시키는 거울의 영역을 지난다. 1990년대 말의 ‘사이보그’와 ‘아나그램’ 연작이 던진 질문들은, 기술과 육체, 영속의 욕망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비춘다. 전시는 선형의 연대기가 아니라, ‘블랙 박스’와 유토피아의 설계도를 닮은 「Civitas Solis II」가 충돌하며 열어젖히는 프롤로그에서 출발해, 공간과 시간이 의도적으로 뒤섞인 길을 걷게 한다. 한 전시장에 모인 약 150점의 작업이 서로의 잔상으로 겹쳐지며, 나는 ‘지금’을 비추는 반사면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를 깨달았을 때 소름을 올라왔다.
그 중심에는 「Mon grand récit(몽그랑레시)」가 있다. 붕괴한 대서사의 잔해들—건축적 스케일의 구조물, 오래된 이상의 표어, 도시의 잿빛 지층—이 하나의 지형으로 조립된다. 때로는 공중에 매달린 비행선 「Willing To Be Vulnerable」이, 때로는 ‘Perdu’ 회화의 흔들리는 궤적이, 완전했던 낙원의 빛이 아니라 그 불완전이 빚어내는 발광을 우리 앞에 가져온다. 거울 미로 「Via Negativa」의 통로를 지나칠 때, 우리는 타인의 작품 안에서 자기 얼굴의 균열을 본다—유토피아는 목적지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