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구도심 조치원
여행자로서 계획도시의 지도를 열면 자를 먼저 꺼내야 하는 충동을 느낀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대로와 복제된 듯한 건물들은 서류철에서 막 걸어 나온 표정으로 서 있고, 세종시는 그런 선입견의 중심에 서 있다. 국가의 심장을 보호하는 갈비뼈처럼 정부청사가 도시의 한가운데를 감싸니, 일의 시간이 도시의 시간을 지휘하는 듯 보인다. 거주에 알맞게 설계된 그늘과 동선, 반듯한 블록의 규칙성은 살기엔 편하지만 여행자의 발걸음엔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서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 흥정의 소리나 오래된 골목의 손때 같은 ‘우연의 기쁨’이 덜 보이는 곳에서 목적지를 삼기란, 표지 없는 책을 집어 드는 일처럼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표지를 넘기듯 세종의 구도심을 먼저 펼쳤다. 세종시의 유일한 읍, 조치원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세종이 생기기 전 충남 연기군의 중심이던 이곳에 조치원역이 서 있고, 열차 문이 열리자 오래된 철로의 숨결과 막 씻어낸 복숭아의 보송한 향이 코끝을 적셨다. 몇 걸음 더 옮기니 시장의 아케이드가 분홍빛 상자들을 품에 안고 웅성거렸다. 마침 장날이었다. 복숭아가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바닥을 수놓고, 소란은 과육처럼 탱탱했다.
오전 허기를 달래러 다시 역에서 가까운 수구레국밥집으로 들어섰다. 초록 페인트의 낡은 외벽 아래, 여행자와 노동자의 허기를 똑같이 품어주는 작은 정류장같은 곳이었다. 소 껍질 아래 얇은 근육인 수구레를 오래 고아 낸 맑고 깊은 국물은 쫄깃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오가며 고소한 풍미를 길게 끌어냈다. 잡내 없는 담백함이 속을 천천히 덥히자, 몸이 먼저 도시와 화해했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분명한 맛—직선의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온도였다.
이제 구도심을 걸었다. 검은 철문을 단 작은 증류소 앞에서 멈췄다. 잠시 망설였다. 위압이라기보다, 아직 오전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의 도덕에 방문을 망설였다. 이내 발길을 돌려 세종시장을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재생의 첫 장, <조치원문화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폐정수장을 비워 전시장으로 바꾸자, 물이 떠난 자리에는 이야기가 고였다. 그러나 공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의구심이 생겼다. 근근하게 공간이 활용되는 느낌을 받았다.
남쪽으로 되짚어 내려오면 붉은 벽돌이 낮게 호흡하는 <청자장 복합문화공간>을 마주한다. 옛 여관과 목욕탕이 북라운지와 카페, 작은 무대로 환생한 곳이다. 다시 걸었다. 여름에 조치원에 오면 복숭아 축제의 분홍빛 소란이 한 겹 더해져, 구도심은 과일처럼 익어 간다. 이 도시의 속도는 늘 같지 않다. 때로는 직선, 때로는 과육을 감싼 곡선으로 박동한다.
길은 다시 남으로 닿아 <조치원 성당> 앞에서 멈췄다. 화려함 대신 단정함을 택한 붉은 벽돌과 아담한 종탑,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턱의 문구. 스테인드글라스를 스친 빛이 의자와 손등 위에 조용히 앉을 때, 도시의 소음은 숨을 죽이고 마음은 한 겹 얇아졌다. 세속 바깥의 여백이 필요한 여행자에게 성당은 잠깐의 ‘정지 화면’이 된다.
성당 곁, <1927 아트센터>는 반대의 에너지로 숨 쉰다. 한때 제지공장이던 건물을 골조째 살려 갤러리와 공연장, 북카페로 엮어 놓았다. 녹슨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 위에 얹힌 전시와 음악이 과거의 침묵을 환하게 덮었다. 그 심장에 <카페 헤이다>가 있다. 통유리 너머 햇살이 테이블마다 따뜻하게 내려앉고, 잔에서 오르는 커피 향은 오래된 공장의 기억을 맑게 해독했다. 주인장의 수집품이 공간을 채웠고, 자개로 된 테이블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시간의 ‘결’에 귀를 댄다. 이곳에서 시간은 소비되지 않고 발효된다.
돌아보면 알겠다. 세종을 여행한다는 건 스펙터클을 사냥하는 일이 아니다. 직선으로 설계된 나라의 심장 옆에서, 조치원이라는 곡선의 하루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일이다. 표지 없는 책이라 주저했지만, 첫 페이지를 넘기자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연달아 나타났다. 여행자인 나는 결국 자(尺)를 내려놓고, 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도시의 미덕은 ‘보여 주는 것’보다 ‘머물게 하는 힘’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