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황토꽃게장>
그 지역에 닿으면 여행의 문법이 갑자기 쉬워진다. 지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숙소는 집이 되고, 낯선 풍경은 시선을 낮춘다. 끓던 찻물이 제 온도를 찾듯 마음의 거품이 가라앉고, 나는 서둘러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여행이란 본디 균형을 일부러 흩뜨려보려는 유희지만, 그 균형을 되찾아 줄 난간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 난간이 사람의 어깨일 때, 잠깐의 기대어 쉼은 다시 떠날 탄력이 된다.
태안에는 ‘하임수’가 있다. 태안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말하자면 ‘태안의 딸’. 그녀가 있는 태안에서 모이자던 말이 본격화 되자, 우리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날짜를 잡았다. 임수는 우리에게 든든한 난간이자 태안의 지층과 우리를 잇는 작은 뿌리였다. 그녀의 발자국은 지도가 놓친 미세한 등고선이 되었고, 우리는 그 선들을 따라 가기도 했다. 덕분에 사택까지 예약되어 아파트 한 호를 편히 쓸 수 있었다. 낯섦은 이미 절반쯤 길을 비켜섰다.
숙소에서 나와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향한 곳은 태안 시내의 게국지 식당이었다. 우림이는 예전부터 게국지 타령을 종종 불렀다. 나 또한 ‘제대로 된’ 게국지는 아직이었다. 택시기사님도 고개를 끄덕이는 집, <향토꽃게장>에 도착했다. 간장게장과 꽃게탕, 그리고 오늘의 주연인 게국지로 이름난 해산물 전문 식당이었다. 의심과 우려는 문밖에 두고, 기대와 흥분만 테이블에 앉혔다. 반찬이 깔리는 속도에 맞춰 소주를 시키고, 늘 그렇듯 반찬을 안주 삼아 ‘주루마블’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간장게장은 짜지 않고 비리지 않았다. 간장의 깊은 감칠맛이 꽃게 살의 단맛을 받쳐 올렸고, 게딱지에 밥을 비벼 넣으면 고소함이 오래도록 입안을 비추는 등잔이 되었다. 하지만 무대 한가운데 선 배우는 따로 있었다. 태안과 이웃 서산에서 즐겨 끓여 먹는 향토 음식, 게국지. 절인 배추와 무, 무청에 게장 혹은 젓갈의 국물을 더해 끓이는 이 국은, 바다의 소금기가 육지의 숨결과 만나는 장면 같았다. 짭조름이 국물의 뼈대를 세우고, 채소의 단맛이 살을 붙이며, 해산물의 깊은 향이 칼칼함을 입혀질 때 소주로 화룡점정을 찍으면 된다. 한 숟가락마다 바람 냄새가 미세하게 스며 들었다. ‘바다의 기억’이란 말을 누가 먼저 했더라—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평을 늘어놓았다.
오래된 일기장처럼, 남은 게장 국물과 김치의 숨, 채소의 결이 한데 모여 게국지의 문장을 썼다. 국물 한 숟가락이 밥 위로 스며들 때 서로 다른 재료들은 경계를 허물었다. 바다의 감칠맛이 채소의 초록 숨결과 만나고, 짭조름한 간장이 따뜻한 밥알을 품었다. 그렇게 게국지는 ‘혼합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맛은 비빔과 혼합에서 결정되지 않던가. 세계가 하나의 맛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결이 공존한 채 합의에 이르는 방식. 태안의 바다가 육지와 손을 맞잡는 태도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은유였다. 우리는 게국지에 대해 전부 극찬하며, 술잔 또한 순식간에 비워 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2차를 시작했다. ‘태안의 딸’이 장만한 대하를 굵은 소금에 얹으니, 껍질이 붉은 신호탄처럼 번졌다. 누군가는 위스키에 콜라를 섞어 우리만의 칵테일을 만들었고, 화면에는 ‘나는 솔로’가 익숙한 패널처럼 말을 건넸다. 나는 평소 이 프로그램을 챙겨 보지 않지만, 여러 명이 모여 TV를 켤 때 이야기가 술술 파생되는 장치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달큼한 탄산이 알코올의 발을 살짝 감추자,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나는 솔로’를 찍고 있었다. 누군가의 몸짓에 취해 모두가 따라 하고, 걸쇠가 풀린 비밀들이 조심스레 공론의 탁자 위로 올라왔다. 다 끓인 라면을 엎어도, 핀잔 대신 실없는 웃음이 먼저 도착하는 밤. 실수는 꾸지람이 아니라 합주를 위한 드럼 비트였다.
돌아보면, 그날 우리가 배운 것은 맛의 목록이 아니었다. 임수라는 난간 덕분에 우리는 낯선 곳에서 균형을 회복했고, 게국지라는 그릇 속에서 혼합의 윤리를 배웠다. 사람과 바다와 시간이 한데 어울려 한 그릇을 이루듯, 여행도 관계와 기억이 스며들며 제 맛을 찾는다. 그래서 나는 믿게 된다. 좋은 여행이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잘 섞이는 일이라는 것을. 태안의 밤이 진하게 내려앉을 때, 우리는 이미 다음 날의 문법을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