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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안덕 | 시간이 조각낸 해변

제주 서귀포 사계해안









처음 제주도를 찾았을 때, 곽지와 협재의 바다는 내게 제주 바다의 전부였다. 맑고 푸른 바다, 잘 정돈된 백사장, 사진으로 보던 이상적인 해수욕장의 모습. 이후 세화와 김녕, 월정리를 거쳐 성산과 서귀포 해안에 이르기까지, 나는 제주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며 바다를 따라 걷는 여행자가 되었다. 바다마다 색이 달랐고, 해안선마다 빛의 결이 달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마음속에 가장 진하게 남은 곳은, 오히려 가장 늦게 찾은 서남쪽 해안이었다. 제주 지도 위로 시계를 그린다면 7~8시 방향, 대정읍과 안덕면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오늘, <사계해안>으로 향했다.


출발 전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제주시에서는 멀쩡하다가도 서귀포로 내려가는 길에 폭우가 내리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기에, 이번에도 마음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하늘은 오늘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듯했다. 구름은 낮게 깔렸지만, 빗방울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산방산이 구름 모자를 쓰고 먼 바다를 등지고 서 있었고, 그 아래 사계해안은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이 해안은 제주에서도 유독 '환상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나는 그 판타지스러운 풍경을, 더 이상 사진이 아닌 눈으로 보고 싶었다.

사계해안은 말하자면 '시간이 조각낸 풍경'이다.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려 굳어지며 만든 암반은, 수천 년의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져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썰물 때가 되면 넓게 펼쳐진 검은 갯바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틈 사이로 해조류와 작은 생물들이 꿈틀댄다. 어민들은 이곳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세월을 살아왔고, 지금도 해안 가까이에는 감귤나무와 돌담이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개발되지 않은 그 정직한 풍경은, 이곳이 아직도 제주라는 섬의 본래 얼굴을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산방산, 송악산, 그리고 형제섬. 이 셋은 사계해안을 감싸는 수호자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산방산은 바다를 등진 거대한 봉우리로, 해안 어디에서든 시선을 끈다. 구름을 뒤집어쓴 그 모습은 날씨에 따라 신비로움의 밀도를 달리하며, 마치 이곳이 신화 속 한 장면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송악산은 해식 절벽과 동굴이 이어진 고요한 산이며, 형제섬은 침식과 해수면의 역사적 흔적을 지닌 두 개의 바위섬이다. 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사계해안을 하나의 자연 박물관처럼 만들고 있었다.

사계해안은 보다가, 그저 머물고 걸으며 ‘느끼는’ 곳이다.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발끝을 적시고, 멀리 보이는 송악산과 형제섬은 마음을 너르게 만든다. 북적임 없는 풍경, 조용한 파도, 그리고 산과 바다가 만든 시간의 그림. 나는 그저 그 속을 천천히 걸었다. 말 대신 고요함으로 채워지는 마음, 그 자체로 충분한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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