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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동해 | 연필이라는 느린 약속

동해 <연필뮤지엄>






꾸준히 아직도 손글씨를 쓴다. 펜도 쓰고, 샤프펜슬도 쓰고, 당연히 연필로도 쓴다. 막걸리 소비기한도 손글씨로 기입한다.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연필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글의 대부분은 타자에서 태어나지만, 특별한 날이나 내 손글씨가 필요할 때면 여지없이 손으로 문장을 만든다. 손글씨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낭만과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두 해 동안 다닌 서예학원에서 배운 간단한 가르침—가로는 반듯하게, 세로는 단단하게, 동그라미는 동그랗게—은 아직도 손가락 관절 속에 남아 있다. 그때는 허무한 농담처럼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정확한 방법도 없다. 나는 선을 긋는 일을 대충 넘기지 않는다. 오른손이 ‘바른손’이라는 말에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던 어린 날 이후, 내 글씨는 더 느려졌지만, 그 느림은 선의 예의를 지키려는 훈련이었다.


연필을 쥐는 일은 세계를 잠시 되감는 일이다. 나무의 결이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흑연의 가루가 종이 위에 얇은 그늘을 깔 때, 생각은 기계의 속력이 아니라 심장의 박자로 적신다. 지우개는 실수를 지우면서도 흔적을 남기고, 그 희미한 자국이 오히려 사유가 지나간 길을 밝혀 준다. 펜촉의 단호함과 달리 연필심의 유연함은 확신보다 망설임의 윤리를 가르친다. 틀릴 수 있기에 더 깊이 묻고, 흐려질 수 있기에 더 또렷이 본다. 손글씨는 문장 이전의 몸짓인 획의 굵기와 속도, 삐침과 숨 고르기가 그 사람의 호흡과 성정을 드러낸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결국 연필은 도구가 아니라 작은 시간의 그릇이다.


여행을 가면 나는 으레 기념품숍의 한쪽으로 걸어가 연필부터 찾는다. 냉장고 자석과 엽서 틈에서 연필들이 빛을 덜 먹은 별처럼 달려 있다. 도시 이름이 금박으로 찍힌 육각의 옆면을 엄지로 문지르면 방금 전 골목의 바람과 박물관의 정적이 동시에 손끝에 묻어난다. 연필은 그곳의 풍경을 즉석에서 번역해 준다. 바다의 짠 공기는 HB, 석양의 기울기는 2B, 모퉁이 빵집의 따뜻함은 지우개 냄새. 펜보다 값싸고 사진보다 덜 결정적인 이 도구는 ‘지금의 나’와 ‘내가 될지도 모를 사람’ 사이에 조용한 다리를 놓는다. 연필이 주는 철학적 메시지는 강하다. 숙소로 돌아와 지도 가장자리에 별표를 찍고 낯선 단어를 옆에 받아 적으면, 여행은 장소에서 문장으로 바뀐다. 느낌이겠지만, 바다가 껴 있는 도시와 빌딩이 가득한 도시의 흑연의 질감은 다르다.


강원도 동해에 도착한 날, 역 앞에서 칼국수를 후루룩 비우고 곧장 <연필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거의 첫 손님으로 유리문을 밀어 들어서자 나무 진열장 속에서 수천 자루의 연필이 숲처럼 서 있었다. 흑연과 삼나무의 은은한 냄새가 걸음을 늦추고, 나라별·용도별로 정갈히 분류된 컬렉션이 ‘쓰는 행위’의 변주를 펼쳤다. 미술관 에디션과 캐릭터 연필이 한 자리에 놓인 풍경은, 문학과 일상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증언했다. 제작 공정을 따라가다 보니 오래 궁금했던 비밀도 풀렸다. 왜 연필은 노란가—알고 보니 19세기 말 최고급 흑연과 품격의 상징을 드러내려 도입된 ‘프리미엄의 색’이었다. 역사 속 마케팅의 신호가 오늘의 관습이 된 셈이다. 진열장 앞에 선 내 손은 가볍게 떨렸다. 수 많은 연필들의 호객행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연필을 좋아한다는 건, 브랜드의 각도와 냄새까지 사랑한다는 뜻이다. 어릴 적, 내 필통 속 ‘미라도’ 브랜드는 늘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컸다. 검은 래커의 단정한 면, 황동 페룰과 분홍 지우개의 대비, 엄지에 닿는 육각의 사소한 각. 심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는 과장되지 않은 HB의 마찰. 미라도 연필을 쥐면 문장은 서두르지 않고, 생각은 선명해졌다. 유행보다 감각을, 속도보다 깊이를, 일회성의 스펙보다 축적되는 필압의 기록을 믿는 마음—그게 나의 자부심이었다. 물론 비싼 연필임을 늘 인지하고 있었기에, 아껴 사용했었다. 기억을 더듬자, 중고등학교 때 잡지에서 오려 붙인 연예인 사진으로 필통을 만들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B보다 연한 HB를 애용하던 학창시절의 손끝,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던 느린 훈련, 반듯한 선과 동그란 원을 공들여 긋던 과거의 오후들. 연필은 결국 시간의 문장부호다. 망설임을 쉼표로, 결심을 마침표로, 사랑을 붙임표로 표기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필을 종종 사용한다. 미세한 어둠을 조금 깎아 밝은 문장으로 만드는 작은 의식이다. 연필이 주는 낭만과 영감은 쓰는 사람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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