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바다 파란>, <여행책방 잔잔하게>, <103 LAB cafe>
도보로 가능한 소도시 여행 코스에는 몇 가지 내 기준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걷기의 품질’이 첫째다. 여행의 시작점에서 가장 먼 곳까지 도보로 30분 내외, 거리로는 약 3km—걷기 싫어하는 동료를 달래며 끝까지 데려갈 수 있는 한계선이다. 그 사이엔 발걸음의 리듬을 유지시킬 볼거리와 작은 휴식이 촘촘히 박혀 있어야 한다. 강원도 동해의 묵호는 이 조건에 이상적이다. 묵호역에서 바다와 마주 선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까지 1.7km. 가장 빠른 길을 택하면, 파란 수평선이 초행자의 시선을 곧장 끌어당긴다. 걷기란 결국, 눈이 발을 설득하는 기술이니까.
묵호역을 나서 타원형 도로를 따라 500m 남짓, 첫 장면은 전통시장이다. 소도시를 읽는 데 시장만큼 정직한 문장은 없다. 묵호의 <동쪽바다중앙시장>은 시간의 소금이 곱게 밴 골목 같았다. 낡은 간판과 오래된 가판들이 만들어내는 음영 속에서 어머니들의 손맛이 김처럼 피어오르고, 발끝으로는 파도 소리가 스며들었다. 로컬의 뿌리 사이로 새로 돋은 잎사귀 같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바다 파란>—이름부터가 잠깐의 쉼을 불러오는, 바다색으로 칠한 소품가게였다. 바다의 깊고 고요한 색채가 공간을 채우고, 나무 테이블 위엔 작고 소박한 바다의 이야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누구나 조용히 머물다 필요한 굿즈를 집어 들고 떠나는 방식이다. 시장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한다면, 이곳은 그 기억에서 파생된 현재형 문장을 매만지는 작업실 같았다.
여행지에선 그 지역의 언어를 구매하는 일이 필요하다. 묵호엔 채지형 여행작가가 운영하는 <여행책방 잔잔하게>가 있다. 문을 미는 순간, 바다가 종이로 환생한 작은 만(灣)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바닷빛 표지의 책들이 파도처럼 선반을 타고 겹겹이 올라앉았고, ‘여행’이라는 단어가 시와 삶 사이에서 천천히 발효되었다. 도시의 번쩍임보다 계절의 박동을 신뢰하고, 지나가는 여행자와 머무는 주민이 한 페이지에서 만나는 장면을 사랑하는 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방은 마을의 공책이자 항해 일지다. 책을 고르는 일은 곧 이 도시를 어떻게 읽을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 권을 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여정은 이미 반쯤 성공한 셈이다.
책방을 나와 바다 쪽으로 발을 돌리면, 골목의 경사가 시야를 세로로 열어젖힌다. <논골담길>이다. 통영의 동피랑길과 더불어 한국의 언덕들은 도시의 ‘경사면 철학’을 일깨운다. 평지의 도시는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지만, 언덕의 마을은 숨과 시선의 속도를 다르게 배치한다. 오르막의 리듬은 세계를 이해하는 ‘노고’의 형태이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그 노고의 투명한 ‘보상’이다. 집들은 빛과 바람을 더 가까이 두려는 욕망의 흔적처럼 층층이 올라앉고, 골목은 개인의 서사와 공동체의 기억이 맞물려 흐르는 미시적 문명사다. 한 걸음마다 숨이 차오르고, 그 숨 사이로 바다가 들이친다. 우리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배운다. 삶이란 결국 수평이 아니라 기울기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라는 것을.
논골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바다는 뒤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골목은 앞에서 나를 시험한다. 파란 대문과 주황 지붕이 햇빛에 번져 물감처럼 흐르고, 계단마다 낡은 구두 한 켤레의 시간이 겹겹이 놓여 있었다. 숨이 차면 길모퉁이 쉼터에서 바람을 한 잔 마시면 된다. 이 언덕의 최적의 관람 시간은 해가 낮게 기울 무렵이다. 골목의 색이 미세하게 변조되는 그 찰나를 오래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도보 여행자가 들 수 있는 가장 가벼우면서도 값진 장비다.
그 시간대를 더 깊이 붙잡기 위해, 나는 언덕 중턱에 창을 가진 카페를 찾았다. 고양이가 사뿐히 뛰어 들어가는 문틈을 따라 들어선 곳은 <103 LAB cafe>이다. 벽화가 이어지는 중턱, 바람의 언덕 가까이에 내려앉은 작은 관측소다. 창가에 앉으면 항구의 크레인 선과 지붕들이 파란 활자처럼 겹겹이 펼쳐지고, 동해가 한 권의 펼친 지도로 넘겨진다. 창문은 프레임이 되고, 커피 향은 책갈피가 되어 장면을 기억에 눌러 담는다. 이곳은 카페와 숙소가 맞물린 구조라 영업이 끝난 뒤엔 투숙객을 위한 조용한 살롱이 된다. 테이블 사이로 고양이들이 가느다란 등대의 빛줄기처럼 스치고, 손님들의 시간이 그 꼬리의 곡선만큼 느려진다. 나는 창가에서 ‘가장 긴 물결’의 자리를 빌려, 더위를 식히며 시간을 기꺼이 허비한다. 허비라는 말이 이토록 충만할 수 있음을, 카페의 유리창이 매번 증명한다.
묵호에서의 걷기는 동선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페이지를 넘기는 독서에 가깝다. 단순한 직선이, 걸음과 호흡, 빛과 바람, 문장과 맛으로 층층이 두꺼워진다. 여행은 멀리 가는 기술이 아니라, 머물러서 멀리 보는 기술이다. 묵호는 그 기술을 가르치는 교과서 같은 도시다. 여기서는 눈이 발을 설득하고, 발이 마음을 설득한다. 그리고 마음은, 바다의 문장 하나를 따라 조용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