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 가까이 마포에 살았지만, 오늘 지도를 펼치고서야 ‘신정동’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났다. 내가 다 아는 줄 알았던 동네의 지도가 낯선 굴곡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 동네에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엔 뿌리와 사연이 깃든다. 한동안 나는 그 낯선 구역들을 중심으로 걸었었다. 길은 발밑에서만 뻗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도 또 한 장의 지리부도가 살아 움직였다.
행정동과 법정동의 구분을 안 것도 그 무렵이다. 행정의 편의를 위해 선거철 자주 불리는 건 ‘행정동’이고, 등기부등본과 지도 위의 공식 표기는 ‘법정동’이다. 마포구는 행정동 16개, 법정동은 26개다. 이름은 행정의 경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름의 결은 지형과 생활, 전설과 인물의 호흡을 함께 싣고 흐른다.
지금 나는 마포의 이름들을 하나씩 만져보았다. 강을 따라가면 먼저 소리가 달라진다. 잔다리의 기억을 품은 ‘서교동와 동교동’, 물길 위쪽을 뜻하는 ‘상수동’, 멀리 조망하던 정자에서 비롯된 ‘망원동’. 강은 이름을 씻어 나르다가도, 어느 모래톱에선 한자를 거슬러 쌓아 올린다. ‘합정동’은 조개 우물의 기척을, ‘창전동’은 광흥창 앞의 곡식 창고 풍경을, ‘용강동’은 지역이 물줄기를 휘감는 용의 허리를 닮았다. 강은 때때로 사람을 불러들여 흔적을 남긴다. ‘당인동’은 ‘많은 사람이 모인 마을’의 다인에서 유래되었고, ‘토정동’은 조선의 학자 토정 이지함이 살았던 곳이었다. ‘하중동과 현석동‘은 강가의 작은 마을(里)들에 붙은 삶의 별칭이다.
산을 더듬으면 바람이 바뀐다. ‘노고산동’은 산 이름이 먼저였고, ‘성산동’은 성곽처럼 둘러친 지형에서 나왔다. ‘상암동’은 ‘위쪽’과 ‘바위’가 만나는 자리, 거칠게 솟기보다 넓게 기댄 어깨 같은 동네다. 이름은 높낮이를 말하지만, 그 사이의 사람살이를 함께 비춘다.
골목으로 발을 들이면 생활의 냄새가 난다. ‘도화동’은 복사꽃이 만발하던 봄빛을, ‘염리동’은 소금장수의 발자국을, ‘대흥동’은 항아리를 굽던 불빛의 온도를 떠올리게 한다. ‘공덕동’은 ‘큰덕’의 너른 등성이를, ‘마포동’은 삼베와 포구의 촉감을 전한다. ‘중동’은 중심을, ‘연남동’은 연희의 남쪽이라는 방향을 말한다. 방향과 중심은 언제나 관계의 언어다. 어디의 남쪽, 무엇의 가운데라는 표현 속에서 동네들은 서로의 좌표가 된다.
이름에는 시간도 흐른다. ‘새로운’이라는 접두를 달고 태어난 ‘신공덕동’, ‘신수동과 신정동’은 예전 지명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형의 마을들이다. 어제의 물과 오늘의 우물, 어제의 공덕과 오늘의 공덕이 이름 속에서 접힌다.
낯익은 거리도 이름의 기원을 알면 풍경이 두 겹으로 겹친다. 공덕의 언덕을 오르면서는 ‘큰더기’라는 옛말이 혀끝에 맴돌고, 창전에서 바람이 불면 창고 문짝이 삐걱이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서교 다리 쪽으로 발을 옮기면 잔다리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촘촘히 박힌 세월이 떠오른다. 이름은 표지판이 아니라 풍경을 켜는 스위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오래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 안다’고 착각하던 마음이 이름 앞에서 조용히 낮아지는 일이다. 이름은 타인을 부르는 방식이자,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다. 동네의 이름을 더듬는 일은 결국 나의 삶을 이루던 장소의 층위를 더듬는 일이다. 내가 걸었던 길 위에, 내가 몰랐던 시간이 포개진다.
지도는 평면이지만, 이름은 입체다. 공덕, 구수, 노고산, 당인, 대흥, 도화, 동교, 마포, 망원, 상수, 상암, 서교, 성산, 신공덕, 신수, 신정, 아현, 연남, 염리, 용강, 중동, 창전, 토정, 하중, 합정, 현석. 이 스물여섯 개의 이름은 행정의 목록이 아니라, 마포라는 삶이 접히고 펼쳐지는 오선지다. 걸음을 음표처럼 올려놓으면, 동네는 각자의 음색으로 응답한다. 이렇게 알고 걷는 도보여행자의 마음은 한결 리드미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