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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 2025년 청주에서 쓰는 나의 일지(2)

청주 <신미만두>, <상당솥뚜껑매운탕>








가려던 식당의 휴무 이슈가 생겼다, 우림이는 후순위로 밀려 있던 후보지들을 쥐어짜듯 꺼내 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멈춰 선 곳은 오래된 골목의 끝, 청주 수동의 만둣국집 <신미만두> 앞이었다. 1982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 작은 분식집은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반은 이미 안도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단출한 세 가지 메뉴만으로 세월을 지켜낸 식당 특유의 단단한 기운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점심을 마친 뒤 저녁 만찬 이전에 체력 충전을 위해 우림이 집에서 오침을 하기로 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거실에는 성심당 빵을 양팔에 안고 온 우림이 대전 동료, 상혁이 서 있었다. 태안에서 쭈꾸미 낚시를 다녀온 윤희와 신우는 녹초가 되어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자는 사람을 그대로 둔 채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요즘 나는 바다가 없는 도시에 오면 민물고기를 먹어보려는 습관이 생겼다. 분지와 강,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그 물이 품은 맛이 곧 그 도시의 숨결을 알려주는 듯해서다. 물론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올지는 늘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지만.


우림의 집에서 멀지 않은 청주 상당구 남일면 단재로, 효촌천을 따라 난 자전거길이 끝나는 들판 한가운데 <상당 솥뚜껑 매운탕>이 있었다. 겉은 평범한 한식당이었지만 안쪽에는 30년 백반집 경력을 가진 대표님의 손맛을 느끼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이었다. 메뉴는 단 하나, ‘메기 매운탕’. 테이블마다 놓인 매운탕 기기는 사장님이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독특한 장치였고, 그 위에 커다란 솥뚜껑이 올라앉아 있었다. 매운탕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먼저 메기살을 건져 먹고, 국물이 졸아들면 시래기밥에 말아 먹고, 이어 수제비와 칼국수로 한 번 더 국물을 우려내며, 마지막엔 누룽지처럼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 네 번의 결말을 지닌 한 가지 메뉴였다.


나는 오래된 강가의 흙내를 예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국물은 깊고 맑았다. 혀끝을 스치는 얼큰함은 불꽃이 아니라 저녁노을에 물든 강처럼 은은했고, 그 은은함 덕분에 소주잔은 계속 내 앞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비린 기척 하나 없이, 국물 속에는 오래 우려낸 시간과 손맛만 남아 있었다. 민물고기를 먹는다는 건 도전일 때가 많지만, 이날의 메기 매운탕은 조용하고도 단단한 성공담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신우와 윤희가 막 잠에서 깨어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안에서의 쭈꾸미 어획량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신우는 내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전시장 작품의 작가가 자신의 군대 선임이라고 ‘자랑’했다. 내일 직접 전시장에 찾아가 확인해보고, 오랜만에 태그를 걸어 안부를 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곧이어 저녁 홈파티가 시작되었다. 우림의 남편 홍택 형님이 바비큐 불을 지피고, 우리는 각자 눈치껏 상을 채웠다. 상혁이는 태안에서 함께 낚시를 다녀온 친구들과 첫 대면을 했고, 곧바로 실패 원인 분석이 이어졌다. “비 온 다음 날은 원래 잘 안 잡혀요.”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미세한 물때의 감각이 테이블 위로 흘러나왔다. 결국 쭈꾸미와 갑오징어의 최종 행방은 단순한 라면 투입보다 더 고급지게 결정되었다.


“내가 회를 뜰게.” 상혁의 호언장담과 함께 부엌으로 향한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아무도 부엌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우리는 결과만 기다렸다. 믿음은 때때로 확인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날 새삼 배웠다. 마침내 공개된 결과물은 ‘꿈보다 해몽’ 같은 한 접시였다. 예상보다 화려하게 플레이팅된 주꾸미–갑오징어 회는 어획량의 부족함을 연출력이 채워준 작은 무대 같았다. 감탄이 이어졌고, 곧이어 갑오징어 라면이 테이블에 등장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는 여러 명의 작품이라는 걸. 태안의 파도와 전날의 비, 낚싯대의 무게와 배 위에서의 기다림, 부엌에서의 고요한 작업, 그리고 테이블 주변에서 오간 믿음까지. 그 모든 것이 얇은 회 한 점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회를 먹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하루’를 나누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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