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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 하루에 네 시간만 영업하는 가성비 끝판왕

영주 <미락숯불식육식당>







진호가 호언장담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반쯤은 믿고 반쯤은 흘려들었다. 영주에 머무르면서 가장 최애하는 고깃집이 있다며, 거긴 진짜 “가격이 기본적으로 미쳤다”고 했다. 고기 퀄리티와 밑반찬, 쌈 재료 퍼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술값까지 싸다고 했다. 뭐, 시골 인심이 원래 그런 거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고기집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의심이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의심을 섞은 마음으로, 우리는 진호의 ‘최애’를 따라 나섰다.


저녁 연기가 도시의 틈새를 천천히 타고 흐르는 시간, 슬슬 골목 끝에서 숯불 냄새가 실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길가에 대충 차를 세우고 걸음을 옮기자, 그 실 끝에 매달려 있던 간판이 하나 나타났다. <미락숯불식육식당>. 딱 봐도 지역 노포, 현지인 맛집, 로컬 맛집처럼 보이는 외양이었다. 특별히 멋을 부린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인스타그래머블한 요소도 없었는데, 오래 묵은 간판과 입구의 분위기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설득력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만의 리듬이 눈에 들어왔다. 영업시간이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딱 4시간뿐이었다. 그 옆에는 크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희 업소는 모든 것이 셀프로 이루어 집니다(고기 굽기, 반찬 담기 등).” 보통 셀프 서비스를 강조하는 문구는 실내 벽 한쪽에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입구부터 선을 긋듯이 선언하고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집이 대충 짐작됐다. 아, 이곳은 사람을 너무 많이 상대해 본, 그래서 손님을 적당히 믿어 보기로 한 누군가가 운영하는 가게겠구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월이 쌓여 검게 빛나는 환풍구와, 긴 세월 동안 불을 머금어온 숯불판, 그리고 이미 자리를 채운 동네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후끈한 공기와 함께 밀려왔다. 진호가 예약을 해두었는지 우리는 별도의 방 같은 공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마치 ‘여긴 당신들 영역이니 마음껏 먹고 마셔라’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가 방 안에 내려앉았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른 뒤, 진호가 이 집의 룰을 설명해 주었다. 말 그대로, 이곳은 거의 모든 것이 셀프였다. 상추, 깻잎, 배추, 묵은지, 파김치, 양파, 대파 같은 반찬들부터, 소주와 맥주, 음료, 그리고 심지어는 계산까지도 손님이 직접 한다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서비스를 줄이려는 꼼수인가?’ 하는 의심이 먼저 떠올랐겠지만, 이곳의 셀프는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하실 수 있죠?” 하고 묻는, 간섭하지 않는 신뢰 같은 것. 우리는 곧바로 그 신호를 알아차린 듯, 펜션 바비큐장에라도 나온 사람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뉴판은 놀라울 만큼 단출했다. 오겹살 같은 두툼한 삼겹살 한 종류가 유일한 주인공이었고, 최소 주문은 3인분, 1인분 200g에 단돈 1만 원.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성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고기가 나왔을 때, 감탄에 감탄이 얹어졌다. 껍데기까지 붙어 있는 도톰한 고기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며 기름을 천천히 흘려내렸다. 그 기름은 불판 위에서 김치를 적시고, 양파와 대파를 감싸 안으며 번져 갔다. 우리는 그 고깃기름을 아깝다는 듯 김치에 묻혀 구웠고, 셀프 바에서 가져온 대파와 양파를 통째로 판 위에 올려 단맛이 우러나도록 천천히 익혔다.


공깃밥을 시키면 된장찌개나 시래기국 같은 소박한 국이 곁들여 나왔다. 게다가 오가피를 달인 물까지 내주시니, ‘고기 먹으면서 몸도 좀 챙기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은근한 농담 같기도 했다. 소주 가격이 3,0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 정도면 노동력을 기꺼이 투입할 만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집에서의 노동은 셀프 서비스가 아니라, 합리적인 투자이자 기꺼운 참여였다.


식사가 한창일 무렵, 윤혜와 승한 커플이 조금 늦게 도착했다. 말차라떼 같은 연두빛 옷을 입고 들어온 윤혜를 보고 우리는 장난스럽게 “말차라떼 등장하셨습니다”라며 박수를 쳤다. 사장님이 슬쩍 방 안으로 들어와 불판의 열과 숯의 상태를 살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사람이지만, 불의 세기를 보는 눈빛은 아주 섬세했다. 왜 4시간만 운영하느냐고,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느냐고 누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을 때, 그는 정확한 계산 대신 “손님들이 즐거우면 그걸로 됐죠”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미락숯불식육식당에 또 오고 싶어지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고기 질이 좋고, 가격이 훌륭하며, 메뉴는 단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뢰가 갔다. 이 가게의 독특한 셀프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놀이처럼 다가온다. “여긴 계산도 우리가 직접 한다더라?”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집. 반찬이 부족하면 일행 중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셀프 바로 향한다. 그 움직임이 귀찮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 되어, 이곳만의 작은 공동체가 잠시 형성된다. 언젠가 다시 영주에 온다면, 나는 또 해가 지기 직전의 골목을 서둘러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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