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잉글리쉬크림티하우스영국다방>
도시에서 기차역은 단순한 교통의 거점이 아니다. 도시 구조와 생활권을 나누는 상징적인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특히 많은 도시에서 기차역을 기준으로 남쪽이 북쪽보다 부유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형, 개발 방향, 인프라 구축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기차역 남쪽은 평지나 강변과 인접한 경우가 많아 인프라와 교통망 확장에 유리하다. 이에 반해 북쪽은 언덕이나 좁은 골목길이 많아 개발에 제약이 따른다. 도시의 초기 개발이 남쪽에서 시작되면서 관공서, 병원, 문화시설 등 핵심 기능도 그쪽에 집중되었고, 그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남쪽은 생활환경과 교육, 상업 등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격차가 고착된 경우가 많다.
목포역도 그러한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역 남쪽에는 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상업시설, 관광 명소들이 밀집해 있다. 근대 시기부터 중심 시가지로 기능해왔고, 지금도 신도심과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주거 환경이 현대화되어 있다.
반면 북쪽은 과거 철도 산업의 배후지였으며, 지금은 좁은 도로와 저층 주거지가 밀집해 정주 여건이 다소 열악하다. 산업 기능이 약해지며 활기를 잃었고, 고령화와 공동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남쪽과의 격차는 뚜렷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객은 목포역에 도착하면 남쪽 광장으로 나와 여행을 시작한다. 북쪽은 관심에서 비켜나 있고, 여행지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북쪽이 궁금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고, 우연히 영국풍의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잉글리쉬크림티하우스 영국다방>이었다. 초록빛 외관이 인상적인 이 카페는 북쪽의 한적한 골목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내부는 마치 오랜 유럽 친구의 거실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덴마크 벼룩시장에서 온 액자, 이태원 앤틱숍에서 구한 접시, 오래된 나무 바닥이 어우러져 작고 고요한 영국식 티룸을 떠오르게 했다.
메뉴는 크림티와 브런치,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크림티 세트는 스콘, 딸기잼, 클로티드 크림, 그리고 티팟에 담긴 진한 홍차가 함께 나온다.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진 디저트들은 담백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맛을 전했고, 밀크티는 예쁜 찻잔에 넉넉하게 담겨 나왔다. 스콘은 단맛이 적어 홍차와 잘 어울렸다.
이 카페의 진짜 매력은 공간에 스며든 세심한 손길과 이야기다.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가 시간과 애정을 담아 모은 것들이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잔잔한 팝송, 편안한 테이블 간격까지.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이곳을 단순한 카페가 아닌 ‘차 한 잔의 여운이 남는 티룸’으로 만들어준다.
잊혀진 듯한 기차역 북쪽,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만난 영국다방은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 같았다. 목포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 순간이었고, 소도시 여행에서 만난 소중한 쉼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