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단양양조장>
물안개처럼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한여름의 단양. 뙤약볕이 읍내를 정오의 침묵으로 누르고 있을 때, 나는 구경시장에서 도보로 십여 분 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굳이 전화를 걸어보지 않았던 건, 어쩌면 무계획이라는 여백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어떤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래된 간판 하나에 멈춰 섰다. <단양양조장>. 햇살에 바랜 간판은 기억 속 낡은 책갈피처럼 건물 앞에 걸려 있었다. 대문 하나 없이 열린 구조의 양조장은, 그 자체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오래된 풍경이었다.
2층으로 구성된 공장은 겉보기엔 아무 기척이 없어, 이곳이 과연 술을 빚는 공간인지조차 잠시 혼란스러웠다. 낡은 외벽에는 세월이 스며든 자국들이 깊은 주름처럼 패여 있었고, 정적 속에서도 묘하게 살아 있는 숨결이 감돌았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공장은 마치 시간이 잠시 머물다 간 쉼터처럼 고요했다. 들리는 건 단지 내 발소리와 먼지 속을 맴도는 바람뿐. 그러나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박스와 페트병은 분명히 오늘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 깊숙이 발을 들이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깨어나는 기척이었다. 그리고 곧, 그 물소리의 주인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웃통을 벗은 채 작업하던 어르신은 이 양조장의 양조사였다. 웃으며 다가온 그의 몸은 놀랍도록 단단했고, 복근은 여느 운동선수 못지않았다. 근육의 시간은 나이를 잊은 듯했고, 그의 눈매엔 오랜 노동과 정직한 시간을 견뎌온 이들만이 지닌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무슨 돈을 받어요, 따라 와요.”
혹시 유료시음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말 한마디에 담긴 단순한 환대는 시원한 바람처럼 마음을 감싸주었다. 그는 종이컵을 들고 말통 하나를 열어, 맑고 은은한 빛을 머금은 막걸리 한 잔을 내게 건넸다. 운전하지 않는다는 내 말에 그는 웃으며,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가요.”라고 하셨다.
잠시 양조장을 둘러봐도 되냐는 물음에, “사장님 오시면 자세히 알려주실 텐데, 일단은 마음껏 둘러봐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공장의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살폈다. 술 냄새는 공기 속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것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세월을 발효시킨 내음이었다. 다른 방에서는 입국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커다란 항아리들이 일렬로 놓여 마치 수십 년 묵은 장인들이 침묵으로 술을 익히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항아리 하나하나엔 시간이 고여 있었고, 그것은 다시 술이 되어 사람들의 하루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 단양양조장은 약 70년의 역사를 지닌 장소다. 건물 앞에 걸린 현판의 굳은살진 나무결과 바랜 글씨는 오랜 세월과의 싸움을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40여 년 전 충주댐 건설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고, 양조장은 뿌리를 옮겨 지금 이곳에 새 터를 잡았다. 현재의 주인은 2대째 양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울어가던 양조장을 그의 모친이 되살려냈고, 그는 다시 이 일을 잇고자 단양으로 내려와 15년째 막걸리를 빚고 있었다.
세상은 달라졌다. 양조장의 이미지는 이제 시골의 상징에서 벗어나, 젊고 유능한 양조인들이 도시에서도 한국술을 빚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나는 이 오래된 양조장 안에서 결코 흐려지지 않는 본질을 보았다. 감미료가 들어간 술이라 해서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고, 고루한 전통이라 해서 쉽게 밀어낼 수도 없다. 문화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땀, 그리고 기억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