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시장 <단양토종마늘순대>
이른 아침, 희뿌연 안개를 뚫고 열차에 올랐다.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흐릿했고, 내 마음도 설렘과 졸음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단양역에 닿았다. 역 앞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니, 잠시 후 낯선 도시의 숨결이 코끝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구경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리는 찰나의 틈으로 한 줌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 속엔 단순한 냄새가 아닌, 이 도시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듯한 강렬한 마늘 향이 스며 있었다. 그 순간, 책에서 읽은 단양이 아닌, 오롯이 내가 '느끼는' 단양이 시작되었다.
시장은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느릿하게 펼쳐졌다. 길게 이어진 골목마다 마늘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고, 그 모습은 장식보다 의식 같았다. 마늘을 삶고 굽고 볶는 냄새가 서로 뒤엉켜,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향이라기엔, 그것은 너무도 또렷한 환영이었다. 단양은 그렇게 냄새로 나를 끌어안았다.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디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 향이 마중 나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양이 마늘로 유명한 이유는 단지 많이 심어서가 아니다. 땅이 품은 기운과 하늘의 온도차, 그리고 오래도록 손끝으로 이어온 농부들의 정성이 이 도시의 마늘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산과 계곡이 만든 날씨는 마늘에게 단맛을 선물했고, 깊은 땅은 그 맛을 품게 했다. 단양의 마늘은 그래서 향이 진하고, 육질이 단단하며, 쉽게 시들지 않는다. 그건 이 땅에 살아온 시간들이 결실을 맺은 작은 결정체다.
배고픔도, 기대도 고요하게 차오르던 아침. 나는 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순댓국집으로 들어섰다. 이름부터 단양과 마늘을 품은 <단양토종마늘순대>. 간판 아래, 회색빛 고양이 한 마리가 식당 문턱에 앉아 있다 도망쳤다. 그러나 그건 낯선 이를 시험하는 몸짓이었을 뿐, 잠시 후 누군가 문을 열자 슬며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 식당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식당 안은 주인장의 지난 시간을 말없이 전시하고 있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빛깔과 사진들, 그 안에 깃든 자부심이 공간을 채웠다.
마늘순대국밥을 주문하자, 먼저 반찬들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끈 건 마늘쫑이었다. 소박한 찬 한 접시가 술안주처럼 입 안에 감돌더니, 첫입에 매운 기운이 번개처럼 혀끝을 때렸다. 단양 마늘의 힘이었다. 한 알 한 알이 이곳의 땅과 햇살을 품고 자라난 생명이었다.
이윽고 마늘순댓국이 나왔다. 국물 위로 피어오른 김 속에서 마늘향이 소소하게 퍼졌다. 순대 속엔 마늘 조각이 박혀 있었고,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그 향이 입안에 조용히 번졌다. 국물은 묵직했고, 진했고, 한겨울 아랫목처럼 속을 데워주었다. 그 안에는 단양의 마늘뿐 아니라, 이 도시가 나를 위해 준비한 환대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이렇게 단양은 향으로 날 응대했고, 음식으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낯설고 새로운 여정은 늘 그렇듯, 냄새와 맛에서 가장 먼저 마음을 뺏긴다. 그리고 단양은, 그 두 가지로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