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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 비 오는 아침, 공중정원 위에 기대다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 빌딩 공중정원>








9시 30분이면 전망대를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가 100%로 원하던 일정이라기보다, ‘내가 여행작가라면 그래도 한 번쯤은 가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직업병 같은 생각이 먼저 발동한 곳이었다. 비까지 오는 오전, 숙소에서 괜스레 이불 속을 뒹굴며 ‘굳이 오늘 가야 하나’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런데 운영 15분 전, 우메다 스카이 빌딩 앞에 이미 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도 그 대오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마치 운동하기 싫은 날, 간신히 헬스장에 도착해 “온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라는 기묘한 성취감을 맛볼 때처럼, 빗속의 줄 서기는 그 자체로 작은 승리였다. 두 건물 사이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창 설치되고 있었고, 연말 감수성이 과잉인 남자로서 그 광경만으로도 이미 마음 한 켠이 먼저 반짝이기 시작했다.


비 오는 오사카의 오전,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자 도시는 서서히 한 장의 회색 수채화로 번져 갔다. 비가 와서 괜히 걱정했는데, 도리어 누군가 공들여 그려 놓은 작품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건물의 윤곽은 흐릿해졌다. 두 동의 빌딩을 공중에서 이어 붙인 거대한 원형 통로와 시스루 에스컬레이터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은빛 뿌리 같았다. 발 아래 173미터, 사람과 차와 전철이 개미처럼 오가고, 강줄기와 고가도로가 뒤엉켜 하나의 거대한 회로처럼 반짝인다. 그 풍경을 내려다보며 문득, ‘도시’라는 것도 결국 수많은 타인의 하루가 겹쳐 만들어진 하나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얼굴의 주름과 혈관을 잠시 위에서 바라보는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숨소리마저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춰지는 듯했다. 같은 장면에 매혹되어 창가에 선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일도 꽤 재미있었다. 각자의 언어와 사연을 가진 타인들이, 잠시 같은 리듬을 타며 그 얼굴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공중정원의 바깥 데크에 나섰을 때, 비에 젖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 공간에 서 있고 걷는 것조차 하나의 도전이었다. 발밑을 확인하는 대신, 긴장감을 일종의 중력처럼 이용해 천천히 원형 데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원형으로 이어진 하늘길 위를 걷다 보면 오사카 시내 전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 멀리 희뿌연 바다의 수평선, 강을 따라 이어진 다리들, 옥상에 널린 빨래와 고층 빌딩의 유리 옆구리, 그 사이로 끼어 있는 낡은 주택가까지, 도시의 모든 층위가 한 시야 안에서 겹겹이 포개진다. 평소 ‘도시에 가면 전망대는 굳이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막상 이런 곳에 서면 어김없이 도파민이 터진다. 그래서였을까. 비 오는 날이라도 굳이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올라온 건, 어쩌면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볼 때만 알 수 있는 어떤 감각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간에는 빗물을 머금은 연인들의 자물쇠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고, 실내 카페의 긴 유리 카운터에는 혼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와 부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 도시의 삶들은 서로의 이름도, 사연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가지만, 같은 비를 맞고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전망대란 결국 ‘나’라는 좁은 시점을 잠시 벗어나 인간과 도시의 스케일을 다시 가늠해 보게 만드는, 작은 철학의 발코니 같은 곳이다. 비 오는 아침의 흐릿한 빛 속에서 오사카는 요란한 상업도시가 아니라, 조용히 나이를 먹어 가는 한 사람처럼 보였다. 우메다 스카이 빌딩 사이로 세워지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 사람의 가슴께에 매달린 작은 브로치 같았다. 나는 그 어깨 위에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는 여행자가 되었고, 빗속에서 조금 일찍 찾아온 연말의 설렘을, 공중정원 위에서 조용히 받아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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